금융위원회가 중동 상황으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비상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8일 신진창 사무처장 주재로 재정경제부·한국은행·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 시장안정프로그램 운영기관, 신용평가사 및 증권사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금융시장반'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는 지난 3월 30일 발표된 금융권 비상대응체계의 일환으로, 중동發 리스크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먼저 중동 상황 이후 채권 시장과 자금 시장의 동향을 집중 점검했다. 최근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 부담으로 주요국의 통화정책 기대치가 조정되면서 글로벌 금리가 오름세를 보였고, 이에 따라 국내 시장 금리도 함께 올랐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해 말 2.953%에서 올해 2월 말 3.041%, 그리고 중동 사태 이후인 이달 7일에는 3.451%까지 상승했다. 회사채(AA- 등급) 금리도 같은 기간 3.476%에서 4.107%로 올라 상승 폭이 더 컸다.
그러나 신용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인 회사채 스프레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스프레드는 회사채와 국고채 금리 차이를 말하는데, 이 수치가 커질수록 시장에서 기업 부도 위험을 높게 본다는 의미다. 이달 7일 기준 회사채 스프레드는 65.6bp(1bp=0.01%포인트)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당시 1개월 만에 137.5bp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안정프로그램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운용이 시장 충격을 완화하는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 3월 한 달간 시장안정프로그램은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 총 2조42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이는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큰 규모이며, 평상시(월평균 8900억원)보다 약 2.7배 많은 수준이다.
특히 지원의 폭과 깊이를 모두 강화해 시장의 취약 부분을 두텁게 지원하는 데 주력했다. 2023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매입을 재개했으며, 신용등급이 낮은(BBB 이하)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머리 CBO(채권담보부증권) 발행도 올해 들어 처음 시작하는 등 본격적인 집행에 속도를 냈다.
신진창 사무처장은 시장안정프로그램 운영기관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한편, 최근 시장 금리의 절대 수준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실질적인 자금 조달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시장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사소한 변수에도 금리와 스프레드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만큼, 4월에도 시장안정프로그램의 적극적인 집행 기조를 이어가라고 당부했다. 특히 최근 유가 상승 등 에너지·공급망 위기에 영향을 받는 취약 산업군의 자금 조달 지원에 더 신경 써 달라고 강조했다.
또한 신 사무처장은 중동 상황 전개 양상에 따라 채권 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경우 시장안정프로그램 지원 규모를 즉시 확대할 수 있도록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앞서 대통령은 지난 3월 5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자금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응해 100조원 규모의 시장안정프로그램을 신속·적절하게 집행하고 관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참석자들은 중동 상황이 산업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번 중동發 지정학적 리스크는 유가 상승과 에너지 공급망 교란을 초래해 실물경제에 타격을 주는 복합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실물 부문의 충격이 금리와 환율 등 금융시장 변동성을 촉발하고, 금융기관의 신용 리스크를 높이는 등 금융 전반으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중동 정세에 민감한 취약 산업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해당 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을 면밀히 분석해 채권 및 단기 자금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 사무처장은 실물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금융권이 든든한 '방파제'가 될 수 있도록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금융권이 협력해 중동 수출 기업 지원과 석유화학 등 피해 업종의 애로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 위기가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발생했던 사례를 상기시키며 “위기 상황 이야말로 우리 금융권의 진정한 위기관리 역량이 드러나는 시점”이라며 정부, 중앙은행, 정책 유관기관, 민간 금융권 모두 합심해 잠재적 취약 요인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신속한 대응 체계를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관계기관과 함께 중동 상황 관련 24시간 시장 모니터링 체제를 지속 운영하고, 금융부문 비상대응 TF 산하 금융시장반 회의를 주기적으로 개최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