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일자리는 어떻게 변할까. 고용노동부가 4월 6일부터 7일까지 서울 콘래드 호텔에서 'APEC 미래 일자리 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에는 국제기구, APEC 회원국 정책담당자, 민간기업, 유관기관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해 인공지능(AI)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논의했다.
이번 포럼은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후속 조치다. 당시 APEC 노동장관 회의에서는 11년 만에 모든 회원국의 합의로 공동성명을 채택했는데, 주요 내용은 AI와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회원국 간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협력하자는 것이었다. 이번 포럼은 사람과 기술이 공존하는 '모두의 AI'를 실현하기 위한 지식과 경험을 교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포럼은 크게 3개 세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세션은 AI와 인구구조 변화가 일자리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 두 번째는 정부 정책 방향, 세 번째는 AI를 활용한 일자리 창출과 공공부문의 AI 활성화를 다뤘다.
임영미 고용정책실장은 개회사에서 "APEC 회원국은 혁신, 포용, 협력으로 연대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며 "한국은 모두의 AI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AI전략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인공지능 행동계획을 마련했으며,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수립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산업 대전환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은 AI 도입으로 일자리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하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산업전환이 산업·지역·직종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관측하는 선제 대응 시스템 구축, 전직 지원과 신산업 고용 활성화, 포용적 고용 안전망과 사회적 보호 강화, 미래형 핵심 인재 양성과 직무 역량 강화 등이다. 현재 노사 의견을 수렴해 세부 추진 과제를 마련 중이다.
기조연설에 나선 OECD 안젤리카 살비 선임 자문관은 AI 전환기의 노동시장에서 정부의 기본계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본계획에는 일자리 영향 관측, 사회적 보호, 고용 안전망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며 한국의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에 이런 내용이 포함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세계은행 사믹 애디카리 선임 경제학자는 기본계획의 직무 역량 강화와 관련해 한국의 AI+역량Up 프로젝트를 세계적 우수사례로 소개했다. 이 프로젝트는 취업기 청년부터 재취업기 중장년까지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 전 생애에 걸친 직무 역량 강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평가다.
한국노동연구원 노세리 박사는 "생산성 향상에 따른 혜택이 불균등하게 분배될 수 있는 AI 시대에 정부가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마련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했다.
민간기업과 회원국들도 다양한 우수사례를 발표했다. 효성ITX 박진수 상무는 AI로 급변하는 콜센터 환경에서 교육을 통한 직무재설계 사례를 소개했다. 전 직원에게 AI 소프트웨어 교육을 실시해 챗봇 AI 설계와 품질 제고 업무를 가능하게 한 뒤, 기존 상담사를 AI 업무에 배치해 고용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포스코 이덕만 지능화센터장은 산업안전 분야에서 AI 기술을 활용한 사례를 발표했다. 기존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용광로 작업을 딥러닝 AI로 원격 운영으로 전환해 산업재해 위험을 줄였다. 홍콩 직업안전건강위원회 보니 야우 만 집행이사는 스마트헬멧 센서로 작업자의 위치와 행동 등 위험 요인을 AI로 분석해 실시간으로 위험을 감지, 산업재해를 예방한 사례를 공유했다.
고용노동부는 고용노동행정 AI 활성화 추진 현황도 공유했다. 박보현 노동행정인공지능혁신과장은 '고용24'와 'AI 노동법 상담' 서비스를 소개했다. 고용24는 AI 인재 추천과 AI 진로·경력설계 등을 통해 맞춤형 매칭을 제공하며, AI 노동법 상담 서비스는 국민 누구나 임금, 근로시간, 실업급여 등에 대한 상담을 24시간 받을 수 있다.
포럼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기조연설에서 OECD 안젤리카 살비 선임 자문관은 OECD 주요국 중소기업의 약 3분의 1이 생성형 AI를 업무에 사용하고 있으며, AI 이용 근로자의 80% 이상이 성과 향상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근로자에게 기술을 갖추게 하고 공공 서비스에 AI 도구를 도입해 노동시장과 공공 서비스의 효과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AI와 고용에 관한 다양한 분석이 이어졌다. 한국노동연구원 노세리 박사는 최근 연구 동향을 바탕으로 AI 도입이 광범위한 일자리 대체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기술 격차에 따른 불평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자의 AI 역량 제고를 위한 평생 학습 시스템 마련, 기술 도입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와 근로자 참여 강화, 책임감 있는 AI 거버넌스 도입 등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OECD 전체 기준으로 AI의 고용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명시적이지 않지만, AI 노출 위험이 높은 직종에서는 생성형 AI 도입 가속화로 청년 고용 증가세가 하락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KT 윤경아 AI랩장은 서비스 산업에서 AI 전환에 따른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전문 A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 공고가 전년 대비 11% 증가하는 등 AI를 활용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했다. AI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과 스타트업이 급증하는 추세도 소개됐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직업훈련 정책과 사회적 보호 방안이 논의됐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고혜원 원장은 AI 영향이 큰 제조업과 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별 AI 교육 전략을 분석하며, 교육 방식이 암기식 학습에서 경험 중심 코칭, 관계 형성 훈련, 문제 해결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은행 사믹 애디카리 선임 경제학자는 AI 전환기 노동시장에서 청년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이를 '글로벌 위기'로 볼지 '점진적 전환'으로 볼지는 의견이 갈린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에서 로봇이 약 140만 명의 저숙련 정규직 근로자를 대체했지만, 같은 기간 약 200만 개의 숙련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ILO 다니엘 사만 선임 경제학자는 AI와 노동 기준 간 연계가 부족한 현실을 지적하며, 채용, 관찰, 의사결정 등 근무 환경에서 AI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 번째 세션에서는 각국의 AI 정책과 우수사례가 발표됐다. 중국 웨이 수 인재과학연구원 부원장은 최근 발표된 국가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을 소개하며 AI 기술 훈련, AI 관련 새로운 직종 창출, 돌봄과 보육 서비스 등을 통해 모든 사람이 양질의 일자리에 종사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로렌스 류 AI싱가포르 국장은 기업 수요 맞춤형 AI 직업훈련 프로그램인 AIAP를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교육생이 약 6개월 동안 다양한 AI 기술을 활용해 기업이 필요한 모델을 개발한 뒤 해당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방식으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포럼을 계기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AI 허브' 유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ILO 등 국제기구의 AI 기능을 통합한 공동 캠퍼스를 한국에 설치해 다른 회원국의 AI 정책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한국의 AI 활용 기술과 인재를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임영미 실장은 "이번 포럼이 사람과 기술의 공존을 위해 각국이 일자리 창출, 공공 AI 활성화, 직업훈련 정책 등에 관한 비전과 경험을 공유하는 연대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며 "연대와 협력을 통해 AI 시대에 사람이 중심이 되는 노동 대전환으로 APEC 회원국 모두가 진정한 성장을 이루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