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년 전, 미국 여의사가 조선 땅에서 써 내려간 편지가 마침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제54주년 보건의 날(4월 7일)을 맞아 양화진기록관이 소장 중인 '로제타 셔우드 홀의 두루마리 기행편지'를 전면 복원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은 국내 최초 여의사 교육기관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세우고, 최초 한글 점자 교재를 제작하는 등 한국 근대 의학과 교육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이번에 복원된 기행편지는 그가 1890년 의료선교사로 미국을 떠나 조선에 도착한 직후까지의 활동을 고향 가족에게 전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편지는 정갈한 영문 필기체로 낱장 94매를 이어 붙인 두루마리 형태로, 가로 16.4cm, 세로는 무려 31.8m에 달한다. 두루마리는 총 2건이며, 1890년 9월 4일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증기선을 타고 호놀룰루와 일본을 거쳐 10월 14일 조선에 도착하기까지 40일간의 태평양 횡단 여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조선 도착 후 1891년 1월 초까지 3개월간의 기록은 특히 더 특별하다. 외국인 선교사의 시선으로 당시 척박했던 조선의 의료 환경과 주민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어, 한국 근대 의료의 시작과 생활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특히 전통 한옥 진료소인 '보구녀관'의 모습, 가마와 전통 혼례, 고종이 청나라 사절단을 맞이하는 행렬 등 로제타가 직접 촬영한 희귀 사진 59점이 편지에 함께 부착돼 있어 당시 시대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편지 내용을 보면, 로제타는 첫날 진료소에서 본 환자가 4명이었고 다음 날은 9명이었다고 적었다. 이후 약 3개월 동안 270명의 초진 환자와 279명의 재진 환자를 포함해 총 549건을 치료했다고 기록했다. 또 1890년 11월 8일에는 고종이 성벽 밖으로 나가 중국 사절을 맞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소총과 총검을 든 군인들, 깃발, 천막, 거친 악기들, 다양한 의상들이 어우러져 매우 인상적인 광경"이라고 생생히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희귀 기록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심각하게 훼손됐다. 부착된 비닐테이프가 변색되고 접착제가 굳었으며, 당시 필기 매체인 아이언 겔 잉크의 부식으로 글자 부분이 갈색으로 변하고 종이가 바스러지는 상태였다. 아이언 겔 잉크는 중세부터 19세기까지 사용된 대표적 필기용 잉크로, 철과 탄닌 성분이 산화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글씨가 부식되고 종이가 떨어져 나가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두루마리가 지름 0.3cm의 작은 나무축에 32m 길이로 말려 있어 꺾임과 접힘 등으로 활용이 어려웠다.
국가기록원은 약 18개월에 걸친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탈락된 글씨 부분을 복원용 한지로 보강해 안정성과 보존성을 높였다. 또 두루마리의 물리적 손상을 막기 위해 원본 크기에 맞는 '굵게말이축'을 사용해 말림 횟수를 최소화했으며,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해 복원을 완료했다. 아울러 열람과 연구, 전시에 활용할 복제본 제작을 위해 고해상도 스캐너로 디지털화도 진행했다.
복원된 기록물은 소장처인 양화진기록관 누리집과 국가기록원 누리집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국가기록물의 보존 수명을 연장하고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2008년부터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현재까지 81개 민간·공공기관의 기록물 9,272매를 복원했다.
강요섭 양화진기록관장은 "우리나라 근대 의료와 교육의 초석을 놓은 로제타 홀 선교사의 기록물이 국가기록원의 도움으로 다시 숨을 쉬게 돼 깊이 감사드린다"며 "선교 역사와 근대사를 연구하는 소중한 기록유산으로 널리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용철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기행편지가 복원돼 보건의료 종사자를 기리기 위한 보건의 날에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연구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도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우수한 복원 기술로 소중한 기록유산이 안전하게 영구 보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로제타 셔우드 홀은 186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1889년 펜실베니아여자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890년 조선에 선교사로 와서 보구녀관에서 사역을 시작했으며, 이후 평양에서 기홀병원, 광혜여원, 에디스 마가렛 어린이병원 등을 설립했다. 1900년에는 한국 최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교과서를 발행했고, 1928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열어 국내 최초 서양의학 여의사인 박 에스더(김점동)를 비롯한 많은 여의사를 양성했다. 1951년 미국에서 별세했으며, 유언에 따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