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정기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들은 국세청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시기에 조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국세청은 4월 2일 한국경제인협회 초청 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세무조사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기업의 성장이 곧 경제성장이라는 친기업 기조에 맞춰 납세자 관점에서 세무조사를 합리적으로 재설계하겠다”며 “정기검진 성격의 정기 세무조사는 납세자가 조사 시기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혁신방안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정기 세무조사 시기선택제’ 전면 시행이다. 지금까지는 국세청이 조사 시기를 결정하면 납세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기업들은 결산이나 주주총회 등 중요한 경영 일정과 겹칠 경우 큰 부담을 느껴 왔다.
이에 국세청은 정기 세무조사 대상자로 선정된 납세자가 안내문을 받은 뒤 3개월 범위 안에서 월 단위로 조사 착수 시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조사는 선택한 달에 착수되며, 착수 20일 전까지는 정식 사전통지도 받는다. 기업은 경영상 중요한 시기를 피해 조사를 받을 수 있고, 조사가 시작되면 세무 이슈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는 ‘중점검증항목 사전공개’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10가지 유형을 선정해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법인세·소득세 신고 때 납세자가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유형별 유의사항, 실제 과세 사례, Q&A 등을 제공한다. 세무조사를 받을 때도 자주 검증하는 항목의 자료를 미리 준비할 수 있어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국세청은 작년부터 기업 사무실에 장기간 상주하던 조사 관행을 혁파하고 ‘현장 상주조사 최소화’를 시행 중이다. 이번 시기선택제와 중점검증항목 공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무조사의 예측 가능성을 대폭 높이기 위한 조치다. 다만 세무조사의 본질적 기능인 탈루 혐의 검증은 기존과 같이 엄정하게 진행될 방침이다.
이날 간담회는 중동전쟁 장기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의 어려움을 청취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국세청은 석유화학 등 중동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업종에 대해 법인세 납부기한 연장과 세무조사 착수 보류, 해외 진출 기업의 이중과세 해소를 위한 상호합의 회의 활성화 등 지원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기업에게 예측 불가능성이 가장 큰 리스크인데 조사 시기와 절차를 예측할 수 없으면 부담이 가중된다”며 “이번 혁신방안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작년 시행한 현장 상주조사 최소화와 함께 이번 시기선택제, 중점검증항목 사전공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계획이다. 앞으로도 조세정의를 위해 세무조사는 엄정하게 실시하되,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조사 방식을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하도록 지속적으로 혁신해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