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기획-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규제 ②-1 보험사 요양사업, 부동산 PF·대출 연계 필요

연중기획-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규제 ②-1 보험사 요양사업, 부동산 PF·대출 연계 필요
국가데이터처의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1051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0%에 달한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셈이며, 이 비율은 2036년 약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생명보험사들도 요양사업을 새로운 성장 영역으로 보고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KB라이프생명이 요양 전문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를 통해 사업을 확대한 데 이어 신한라이프케어, 삼성노블라이프, 하나더넥스트라이프케어 등 주요 생명보험사들도 요양 자회사를 설립했다.
다만 수요가 많은 수도권 도심에 요양시설을 건설하려면 상당한 초기 자본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금융권의 대출 지원이 없으면 시설 확장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현행 노인복지법 소유 규제가 부른 ‘자본 압박’
보험사들이 직면한 대표적인 제도적 제약은 시설 소유 규정이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입소 정원 30명 이상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하려면 운영자가 해당 토지와 건물을 직접 소유해야 한다.
이 규정은 시설 운영 중단에 따른 입소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지만, 수도권처럼 토지 가격이 높은 지역에서는 신규 시설 공급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요양시설 수요는 서울·수도권 도심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접근성과 의료 인프라 등을 고려해 도심 입지를 선호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가 운영 중인 위례빌리지와 서초빌리지 역시 높은 입소 수요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수도권 주요 입지에서 토지를 매입하고 시설을 건설하는 데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보험사가 자체 자본만으로 복수의 시설을 동시에 건설하기는 쉽지 않아 외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한 구조다.
실제 투자 규모도 제한적인 수준이다. KB라이프생명은 지난해 6월 KB골든라이프케어에 500억원을 추가 투자했고, 하나생명은 같은 해 6월 자본금 300억원 규모로 하나더넥스트라이프케어를 설립했다. 삼성생명도 지난해 8월 100억원을 출자해 삼성노블라이프를 출범시켰다. 다만 이 정도 규모로는 수도권에서 복수의 시설을 동시에 개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부동산 PF 경색… 요양사업 금융 조달 ‘난관’
시설 개발에 필요한 자금은 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은행 대출을 통해 조달된다. PF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향후 발생할 수익을 담보로 금융기관이 자금을 대출하는 방식으로, 초기 토지 매입 단계에서는 단기 대출인 브릿지론이 활용되고 인허가 이후 공사가 시작되면 본 PF 대출로 전환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최근 국내 부동산 금융시장은 고금리와 건설 원가 상승, 일부 건설사의 유동성 문제 등이 겹치면서 PF 대출 심사가 전반적으로 강화된 상태다.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 모두 신규 PF 대출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요양시설 개발 역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은행들이 요양사업을 일반 부동산 개발과 유사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점도 금융 조달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요양 서비스 수요는 고령화와 함께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4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장기요양보험 인정자는 약 116만명으로 전년 대비 6.1% 증가했다.
아파트 분양 사업과 달리 요양시설은 완공 이후 입소자를 기반으로 장기간에 걸쳐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그러나 현재 대출 심사 체계에서는 단기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 사업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요양시설은 운영 이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발생하는 사업 구조라는 점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 요인으로는 신용공여 규제가 거론된다.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계열사나 자회사에 제공할 수 있는 대출과 지급보증 규모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
금융지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금융지주회사법에서도 금융지주 안의 자회사끼리 서로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요양시설 자회사가 토지 매입이나 시설 건설 과정에서 모회사 지원을 활용하는 데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신디케이트론·리츠 등 ‘요양 맞춤 금융’ 필요
전문가들은 요양시설 사업 특성에 맞는 금융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요양시설은 입소가 이뤄지면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급여와 입소자 본인 부담금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발생한다. 대형 보험사의 신용도와 운영 경험이 결합될 경우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장기 투자 자산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안으로는 은행·보험사·증권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신디케이트론이나 전용 펀드 조성 등이 거론된다. 장기 운영 수익을 기반으로 하는 요양시설 특성을 고려하면 단기 분양 수익 중심의 기존 부동산 PF와는 다른 금융 구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부동산투자회사(REITs·리츠)를 활용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일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요양시설을 건설한 뒤 보험사가 운영을 맡고 수익을 배분하는 ‘헬스케어 리츠’ 모델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노인요양시설과 시니어 주거시설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헬스케어 리츠가 하나의 투자 자산군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2024년 9월 ‘일본의 헬스케어 리츠 시장 동향’ 보고서를 통해 의료·요양시설 기반 리츠 시장이 고령화와 함께 확대되고 있으며 안정적인 임대 수익 구조를 기반으로 장기 투자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와 자회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해 요양·헬스케어 등 시니어 산업 진출을 허용하는 제도 개선을 시행했다. 다만 요양시설의 토지·건물 소유 규제와 금융 조달 구조 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요양시설을 단순한 부동산 개발 사업이 아니라 사회 인프라 투자로 보고 민간 자본을 활용한 투자 구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험사가 자회사를 통해 요양시설을 확충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제도 보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