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격해진 보험부채 평가… 보험사 손해율 가정 더 보수적으로
금융당국이 보험부채 평가의 핵심 가정인 손해율·사업비 산출 기준을 구체화한다. 보험사가 낙관적인 미래 전망을 적용해 보험부채를 낮게 평가하는 관행을 줄이고, 보험사별 계리가정의 비교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9일 ‘계리감독 선진화 방안’ 이행 등을 위한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안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정 사항은 원칙적으로 6월 말 결산부터 적용되며, 실무 준비가 필요한 일부 사항은 12월 말 결산부터 시행된다.
2023년 새 보험회계 국제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도입되면서 보험사는 결산 시점의 할인율과 계리가정 등을 토대로 보험부채를 산출하고 있다. 다만 미래 전망이 반영되는 계리가정의 특성상 최소 기준이 미흡할 경우 보험사가 자의적이고 낙관적인 가정으로 보험부채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 손해율 가정 보수성 강화
개정안의 핵심은 손해율 가정의 중립성·보수성·비교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다. 손해율 가정은 담보별 경과기간에 따른 보험금 대비 보험료의 예상 추이를 뜻하는데, 이 수치를 낮게 잡으면 장래 지급할 보험금 규모도 낮게 추정돼 보험부채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우선 경험통계가 5년 이내인 신규담보에 대해 유사담보 손해율을 준용하거나 임의의 낙관적 손해율을 적용하는 방식이 제한된다. 앞으로는 보험개발원의 참조순보험요율에 안전할증을 반영한 보수적 손해율과 상위담보 실적손해율 중 더 높은 값을 적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 출시된 갑상선암 발생 담보처럼 경험통계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세부 담보의 경우, 이를 포괄하는 상위담보인 암 발생 담보의 실적손해율과 비교해 더 보수적인 수준으로 가정을 세우게 된다.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을 제외한 갱신형 담보의 보험료 갱신 가정도 현실화된다. 그동안 일부 보험사는 미래 보험료 인상을 전제로 손해율이 목표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가정해 부채를 줄일 수 있었다.
앞으로는 목표손해율을 보수적 손해율과 실적손해율 중 큰 값으로 정하고, 장래 갱신보험료 인상·인하폭도 직전 5년 예정위험률의 연환산 증감률을 고려한 한도 안에서 반영해야 한다.
■ 사업비·계리가정 관리체계 정비
최종손해율 기준도 강화된다. 특정 경과년도 이후 동일한 손해율을 적용하는 경우 실제 통계량을 고려해 담보별 적용 시점을 정해야 하며, 관측된 손해율 악화를 전문가 판단이나 한도 설정 등을 통해 축소·이연·제한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통계적 충분성과 유의성이 확보되는 경우에는 연령·성별·직업 등 위험 속성별로 손해율 산출단위를 세분화하고, 매년 적절성을 검증해야 한다.
보험계리 전문가는 “손해율 산출단위 세분화 조치는 충분한 통계가 있는데도 여러 담보를 묶어 산출하던 관행을 줄이라는 의미”라며 “다만 경험통계가 부족한 신규담보에 보수적인 손해율을 적용해야 하는 만큼, 보유계약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형사는 신규담보 출시와 상품 개발 전략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비 가정도 정비된다. 보험사는 사업비 가정 산출 시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 등을 감안한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야 하며, 비용 발생기간을 자의적으로 조정하거나 단축할 수 없다. 계리가정 산출과 관련한 경험통계, 산출·보정방법, 의사결정체계도 문서화하고, 계리가정 변경 시 변경 사유와 재무영향 등을 위험관리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 내부모형·ORSA 의무화 확대
이번 개정에는 K-ICS 내부모형 승인기준과 자체위험 및 지급여력 평가체제(ORSA) 정비도 포함됐다.
보험사는 감독당국 승인 절차를 거쳐 자체 내부모형으로 K-ICS 요구자본을 산출할 수 있게 된다. 내부모형 승인을 받으려면 사업계획, 상품개발, 자산·부채 종합관리(ALM), 자본관리 등 주요 의사결정에 내부모형을 실제 활용하고, 통계적 적정성·검증체계·문서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ORSA는 국내에서 영업하는 보험사에 원칙적으로 의무화된다. 다만 수입보험료 5000억원 이하 소형사와 외국보험사 국내지점은 시행 유예가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이사회와 경영진이 ORSA 운영과 평가 결과에 책임을 지고, 평가 결과가 위험관리 목표와 사업계획 수립 등에 활용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가이드라인 시행에 따른 지급여력(K-ICS·킥스)비율 하락과 자본조달 부담 우려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을 예고했던 지난 1월이나 4월과 비교해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할인율이 올라 부채 가치가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며 “금리 상승 효과로 가이드라인 적용에 따른 영향은 일부 경감될 것이며, 업계 우려와 달리 안정적인 수준에서 관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기준 적용으로 신규담보와 갱신형 상품의 부채 평가가 보수화되고, 상품 개발 과정에서 리스크관리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2분기 결산 이후 자사 경험통계가 확실하게 축적된 보험사 중심으로 세부 타깃층 대상의 보수적인 상품 개발 전략이 확대될 것”이라며 “비실손 갱신형 상품은 초기 보험료가 인상되거나 보장 한도가 축소되는 등 소비자가 체감하는 상품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법인보험대리점(GA)업계 관계자는 “손해율 상승과 계리가정 가이드라인 영향으로 손해보험사를 중심으로 상품 한도 축소와 인수 기준 강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며 “공격적인 위험담보보다 보험사 입장의 우량담보를 조합한 상품이 늘면서 하반기 상품 변별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경쟁은 수수료나 시상, 신입 설계사 교육 지원 등 비가격 영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