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인류에게 진정한 평화란 존재하는가? 인류는 역사상 수많은 전쟁을 치러 왔다.
정글 속 동물들처럼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가장 보편적으로 지배하던 곳이 전쟁터 아니었던가. 제2차 세계대전은 가장 참혹했던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홀로코스트와 원폭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극단의 잔인함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오늘날 나름 그 기능을 잘 발휘하고 있는 ‘평화의 기구’ UN을 탄생시킨 건 역설적이게도 전쟁 때문이었다.
전쟁사에서 꼭 인간끼리만 전쟁을 벌인 건 아니었다. 1차세계대전 직후 호주에서는 타조 다음으로 큰 조류인 에뮤 떼와 5주간의 전쟁을 치렀다.
참전용사들이 정부로부터 분배받은 농경지에 밀농사를 시작했는데, 2만 마리의 에뮤 떼가 번식기를 맞아 이 농경지로 몰려와 울타리를 부수고 밀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대공황 시기에 생계가 막막해진 농민들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정부는 이례적으로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루이스 경기관총 2정과 1만 발의 탄약을 가진 포병대 소속 군인들이 참전했다. 수천 발의 총알을 쐈음에도 불구하고 사살된 에뮤는 수백 마리에 불과했다.
에뮤의 가죽이 워낙 두껍고 깃털이 촘촘해 총탄을 잘 견뎌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인간이 조류를 상대로 항복을 선언하며 전쟁은 끝이 났다.
기관총이라는 압도적인 기술을 가졌음에도, 생존 본능으로 뭉친 에뮤에게 패배한 셈이다. 기원전 480년 그리스 아테네 근처의 살라미스 앞바다에 당대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그리스 연합군은 육지에서 패배했고, 아테네는 불타버렸다. 그리스인들에게는 나라가 사라질 위기이자 전멸의 공포 속에 치른 전쟁이었다.
페르시아 해군은 약 1200척의 함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리스 연합군에게는 고작 300~400척 뿐이었다. 정면 대결은 자살 행위였던 셈이다.
그리스의 지휘관 테미스토클레스는 넓은 바다에서는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페르시아 함대를 좁은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했다. 덩치가 크고 수가 많은 페르시아 배들은 좁은 해협에서 서로 엉켰고, 작고 빠른 그리스 배들은 이 틈을 타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군이 도망가려 한다며 가짜 정보를 흘려 페르시아군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페르시아 해군은 궤멸됐고, 보급로가 끊긴 크세르크세스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승리로 인해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철학, 예술이 보존될 수 있었고, 훗날 서구 문명의 뿌리가 됐다. 전쟁은 국경선 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은 기업들에게 시장 점유율 1%를 높이기 위한 데이터와 마케팅의 전장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매일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정치권은 국민을 위한 공익적 가치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진영의 승리를 위해 선전전으로 날을 지새운다. 청년들은 옆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고단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제각기 다른 전선에 서 있는 참전용사들인 셈이다. 가장 참혹한 전장은 의외로 내면이다.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 타인보다 높이 올라가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강박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 안드레이가 전쟁터의 차가운 하늘을 보며 삶의 허무와 평화를 동시에 느꼈듯, 우리도 각자의 전선에서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치열한 사투 끝에 우리가 진정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평화는 외부의 승리가 아닌, 내면의 고요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톨스토이는 그의 또 다른 걸작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에서 날카로운 통찰을 던졌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지키는 조건은 리스크를 관리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몇 가지 원칙으로 좁힐 수 있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전쟁터로 몰아넣는 불행의 씨앗은 수만 가지다. 결국 전쟁을 멈추고 평화로 나아가는 길은, 그 수만 가지 불행의 이유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주체적인 결단에서 시작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포성과 우크라이나의 비명은 멀리 있지 않다. 내 안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매일 밤 벌이는 내면의 총성 또한 그만큼의 무게로 나를 파괴하고 있다.
전쟁을 멈추게 하는 열쇠는 승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다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