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장관 김영훈)는 4월 6일부터 7일까지 서울 콘래드 호텔에서 'APEC 미래 일자리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에는 국제기구, APEC 회원 경제체(회원국) 정책담당자, 민간기업, 유관기관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인공지능(AI)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심층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APEC 노동장관 회의도 열렸는데, 이는 2014년 베트남에서 개최된 이후 11년 만이었다. 당시 회의에서는 'AI와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회원경제체 간 우수사례 공유와 협력'을 내용으로 한 공동성명이 모든 회원경제체의 합의로 채택됐다. 이번 포럼은 그 후속 조치로, 미래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 회원경제체 간 지식과 경험을 교환하고 사람과 기술이 공존하는 '모두의 AI'를 실현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포럼은 크게 세 개의 세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AI와 인구구조 변화가 일자리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두 번째 세션에서는 그에 따른 정부 정책 방향을, 세 번째 세션에서는 AI를 활용한 일자리 창출과 공공부문의 AI 활성화(AX)를 다뤘다.
고용노동부 임영미 고용정책실장은 개회사에서 "APEC 회원경제체는 혁신, 포용, 협력으로 연대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한국은 모두의 AI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AI전략위원회를 출범시켜 '인공지능 행동계획'을 마련하고,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수립해 사람이 중심에 있는 산업 대전환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은 AI 도입으로 일자리 감소가 우려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하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산업전환이 산업·지역·직종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관측하는 등 과학적 기반의 선제 대응 시스템을 구축한다. 둘째, 전직을 지원하고 신산업 고용을 활성화함과 동시에 포용적 고용 안전망과 사회적 보호를 강화한다. 셋째, 미래형 핵심 인재를 양성하고 직무 역량을 강화한다. 현재 노사 의견을 수렴해 세부 추진 과제를 마련 중이다.
기조연설을 맡은 OECD 안젤리카 살비 선임 자문관은 AI 전환기의 노동시장에서 정부 기본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본계획에는 반드시 일자리 영향 관측, 사회적 보호, 고용 안전망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하며, 한국의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OECD 주요국의 중소기업 중 약 3분의 1이 업무에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으며, AI를 이용하는 근로자 80% 이상이 성과 향상을 경험했다는 데이터도 제시했다.
세계은행 사믹 애디카리 선임 경제학자는 기본계획에서 직무 역량 강화와 관련된 한국의 'AI+역량Up 프로젝트'를 세계적 우수사례로 소개했다. 취업기 청년부터 재취업기 중장년까지 맞춤형으로 교육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전 생애에 걸친 직무 역량 강화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에서 로봇이 약 140만 명의 저숙련 정규직 근로자를 대체했으나, 같은 기간 약 200만 개의 숙련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노세리 박사는 "생산성 향상에 따른 혜택이 불균등하게 분배될 수 있는 AI 시대에서 정부가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마련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연구 동향을 바탕으로 AI 도입이 광범위한 일자리 대체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지만 기술 격차에 따른 불평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AI 노출 위험이 높은 직종에서는 2023년 이후 생성형 AI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청년 고용 증가세가 하락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번 포럼에서는 민간 기업과 회원경제체의 다양한 우수사례도 발표됐다. AI로 급변하는 콜센터 고용 환경과 관련해 효성ITX 박진수 상무는 교육을 통한 직무 재설계 사례를 소개했다. 전 직원에게 제미나이 등 AI 소프트웨어 교육을 실시해 챗봇 AI 설계와 품질 제고 업무 등을 가능하게 한 뒤, 기존 상담사를 AI 업무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콜센터 고용에 대한 부정적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업안전 분야에서 사람과 AI 기술의 조화를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사례도 제시됐다. 포스코 이덕만 지능화센터장은 기존에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용광로 작업을 딥러닝 AI를 통해 원격 운영으로 전환해 산업재해 위험을 줄인 사례를 소개했다.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규칙을 찾는 AI 기술을 활용해 고위험 작업장의 안전성을 크게 높였으며, "제조업에서 AI는 단순히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업무를 자동화해 업무의 본질을 변화시킨다"고 강조했다.
홍콩 직업안전건강위원회 보니 야우 만 집행이사는 스마트헬멧 사례를 발표했다. 작업자의 위치, 행동 등 위험 요인을 센서로 탐지하고 AI로 분석해 실시간으로 위험을 감지함으로써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고용노동부는 고용노동행정 AX 추진 현황도 공유했다. 박보현 노동행정인공지능혁신과장은 '고용24'와 'AI 노동법 상담' 서비스를 설명했다. 고용24는 AI 인재 추천 서비스와 AI 진로·경력설계 등을 통해 맞춤형 매칭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AI 노동법 상담은 국민 누구나 임금, 근로시간, 실업급여 등에 관한 상담을 24시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포럼에서는 이 밖에도 다양한 주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KT 윤경아 AI랩장(상무)은 서비스 산업의 진화와 관련해 AI 접근성 향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과 스타트업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고혜원 원장은 AI 영향이 큰 제조업과 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별 AI 교육 전략을 분석하며, 교육 방식이 암기식 학습에서 경험 중심 코칭과 문제 해결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싱가포르 AI 싱가포르 로렌스 류 국장은 기업 수요에 맞춘 AI 직업훈련 프로그램인 'AIAP'를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교육생이 약 6개월 동안 다양한 AI 기술을 활용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모델을 개발한 뒤 해당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연계한다. 중국 인재과학연구원 웨이 수 부원장은 최근 발표된 국가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을 소개하며 AI 기술 훈련, 새로운 AI 관련 직종 창출, 돌봄과 보육 서비스 등을 포함한 정책을 설명했다.
ILO 다니엘 사만 선임 경제학자는 AI 윤리 가이드가 설명 가능성, 개인 자율성 존중, 공정한 기회 등을 중시하고 있지만 AI와 노동 기준 간 연계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무 환경에서 AI를 활용하는 채용, 관찰, 의사결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포럼을 통해 한국이 글로벌 AI 허브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의지도 드러냈다. 임영미 실장은 "대한민국은 모두를 위한 AI를 구현하기 위해 '글로벌 AI 허브'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며 "ILO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AI 기능을 통합한 공동 캠퍼스를 우리나라에 설치해 다른 회원경제체의 AI 정책 역량 강화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7일까지 이어지는 포럼은 폴리텍대학 정수 캠퍼스 스터디 투어로 마무리되며, 참가자들은 한국의 직업훈련 현장을 직접 살펴볼 예정이다. 포럼은 회원경제체 간 연대와 협력을 통해 사람과 기술이 공존하는 미래 일자리를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