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사진이나 영상 같은 의료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학습해 만든 합성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가 도입된다. 정부가 AI와 수소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규제 샌드박스(규제 특례)를 대거 승인하면서다.
산업통상부는 4월 2일 제1차 산업융합 규제특례 심의위원회를 열어 총 32건의 안건을 논의하고, 이 중 26건의 규제샌드박스 과제를 승인했다고 3일 밝혔다. 규제샌드박스는 신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일정 조건 아래에서 시험·검증하거나 시장에 먼저 출시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해주는 제도다.
이번 심의에서 가장 주목받은 분야는 AI 기반 의료 서비스다. 그동안 이미지·영상 등 비정형 합성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기업들이 신사업에 활용하기 어려웠다. 합성데이터는 실제 데이터를 모방해 생성한 가상의 데이터로, 개인정보 노출 위험을 줄이면서도 AI 학습에 필요한 대량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오솔루션’은 연세대 치과병원과 함께 치아 교정 및 치료 시뮬레이션 서비스를 실증한다. 환자의 치과 교정이나 수술 전후 모습을 가상으로 보여줘 의료진을 보조하는 AI 서비스다. ‘에스와이엠헬스케어’는 길의료재단과 협력해 환자의 근골격계 질환을 검진·예측·처방·사후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환자 진료 데이터를 비식별화해 합성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AI로 학습시켜 맞춤형 재활 운동 처방까지 내리는 방식이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는 비정형 합성데이터의 익명성 검증 기준이 없어 데이터 생성자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실증 특례는 합성데이터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별도 평가·검토 절차를 거치고, 안전성 검증 지표를 보완하며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는 조건으로 승인됐다. 이를 통해 개인 의료정보를 합성데이터로 대체해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AI 모델 기반의 맞춤형 의료 서비스 사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소에너지 분야에서는 수소 저장 기술과 활용 확대를 위한 실증 특례가 승인됐다. 한국건설기계연구원 등은 수소를 금속에 흡착해 고체 형태로 저장하는 ‘수소저장합금’ 시스템과 이를 적용한 수소 지게차를 실증한다. 현행 제도는 기체 압축 방식만 규정하고 있어 고체 저장 방식의 충전 기준이 없었지만, 이번 특례로 저압 환경에서도 안전하고 경제적인 수소 저장·충전 시스템 구축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모아소프트 컨소시엄은 항공기용 수소연료전지 개발 및 육상실증 특례를 부여받았다. 고중량(1,000kg급) 항공기에 탑재할 수소연료전지 추진 시스템의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이 목표다. 앞서 600kg 이하 경량 항공기용 수소연료전지는 2023년 규제샌드박스 실증을 거쳐 지난해 12월 제조·검사 기준이 마련된 바 있다. 이번 실증 결과는 1,000kg급 항공기용 수소연료전지의 안전 및 인허가 기준 마련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번 심의회에서는 2026년 기획형 1호 과제로 ‘AI 기반 실시간 보안위협 탐지·대응 기술’이 선정됐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특정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려면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해 AI 기반 보안 관제에 필요한 데이터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 특례는 해당 의무를 유예하는 대신 외부 전송 제한 등 안전장치를 조건으로 실증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외부 네트워크 연결이 빈번하고 보안이 취약한 환경에서도 보안위협을 실시간으로 탐지·대응해 기업의 핵심 기술과 고객 정보 유출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과제는 오는 4월 산업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모를 실시하고 실증사업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생활 밀착형 과제들이 승인됐다. 로보티즈AI는 자율주행 실외이동로봇을 활용한 옥외광고 서비스를 실증한다. 현행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상 자율주행로봇은 광고물 표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부가조건(광고 금지 지역 준수, 밝기 제한, 공공목적 광고 20% 이상 송출 등)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특례가 승인됐다.
㈜시스톤 등 8개 사는 하나의 사업장에 여러 미용 사업자가 입주해 공용 설비를 공유하는 ‘공유미용실’ 서비스를 실증한다. 현행 공중위생관리법은 1개 사업장 내 2명 이상 영업자가 미용업을 할 경우 각자 시설을 개별적으로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어 공유 영업이 제한됐다. 이번 실증을 통해 미용사의 창업 비용 절감과 수익성 제고가 기대된다.
오르노 합정점 등 5개 사는 반려동물 동반 출입이 가능한 음식점에서 반려동물용 메뉴를 제공하는 실증을 진행한다. 현행 사료관리법상 반려동물용 음식을 제조하려면 가축 사료 제조에 준하는 시설과 등록이 필요했지만, 이번 특례로 기등록된 사료 제품을 단순 조리해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케이에스에너텍은 폐플라스틱을 고온 가스화해 수소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실증한다. 폐플라스틱에서 추출한 합성가스로 수소를 만들어 인근 충전소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이 설비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에이치디현대중공업은 이동식 매니폴드와 유연호스를 활용해 트럭 고정 탱크에서 선박으로 LPG를 직접 충전하는 시스템을 실증한다. 기존에는 LPG 연료추진선 시운전을 위해 선박을 육상 터미널까지 이동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이번 특례로 조선 공정 효율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주류 자동판매기 사업은 도시공유플랫폼, 신세계아이앤씨, 페이즈커뮤, 일월정밀 등 4개 사가 임시허가를 받았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실증특례를 운영한 데 이어, 생체인증 도입, CCTV 설치, 심야시간 운영 단축 등을 조건으로 법령 개정 시까지 임시허가가 승인됐다. 이를 통해 유·무인 편의점에서 성인인증 기능을 갖춘 주류 자판기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풀무원헬스케어는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식품을 하나로 구성한 ‘융복합 건강기능식품’ 제조·판매 사업에 대해 임시허가를 받았다. 식약처가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개정 법률 시행 전까지 영업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김성열 산업성장실장은 “AI 기반 서비스와 수소에너지 활용이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되면서 산업 전반의 혁신과 새로운 시장 창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신기술의 실증과 사업화를 적극 지원하고, 제도 개선도 병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