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사진이나 영상 같은 의료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학습시켜 만든 '합성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진단과 처방, 사후관리까지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월 2일 제1차 산업융합 규제특례 심의위원회를 열고 총 32건의 규제특례 안건을 논의해 26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심의에서는 특히 AI 기반 의료서비스와 수소에너지 분야 과제가 대거 포함됐다.
규제샌드박스는 신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일정 조건 아래에서 시험·검증하거나 시장에 먼저 출시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해주는 제도다.
◇ AI 합성데이터, 의료 혁신 이끈다
가장 주목할 과제는 AI 합성데이터를 활용한 의료서비스다. 합성데이터는 실제 환자 데이터를 모방해 만든 가상 데이터로, 개인정보 노출 위험을 크게 줄이면서도 AI 학습에 필요한 대량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에스와이엠헬스케어는 길의료재단과 함께 근골격계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AI 재활 운동처방 서비스를 실증한다. 환자의 진료 데이터를 비식별화해 합성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AI가 학습해 검진·예측·처방·사후관리까지 전 주기에 걸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다오솔루션은 연세대 치과병원과 협력해 치아 교정 및 치료 시뮬레이션 서비스를 실증한다. 환자의 치과 의료 데이터로 합성데이터를 생성한 뒤 AI가 교정 전후 모습을 가상으로 보여줘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 계획 수립을 돕는다.
그동안 이미지·영상 같은 비정형 합성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기업들이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번 실증을 통해 합성데이터의 익명성 검증 기준이 마련되고, AI 기반 맞춤형 의료서비스 구현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 수소에너지, 저장·활용 기술 실증 확대
수소에너지 분야에서는 저장 기술과 활용 범위를 넓히는 실증특례가 대거 승인됐다.
한국건설기계연구원 등은 수소를 금속에 흡착해 고체 형태로 저장하는 '수소저장합금' 시스템을 적용한 수소 지게차와 전용 저압 충전소를 실증한다. 현행 제도는 기체 압축 방식만 규정하고 있어 고체 저장 방식은 제도적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이번 특례로 안전하고 경제적인 수소 저장·충전 인프라 구축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모아소프트 컨소시엄은 항공기용 수소연료전지 개발과 육상 실증을 추진한다. 최대 이륙중량 1,000kg급 항공기에 탑재할 수소연료전지의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해 관련 제조·인허가 기준 마련에 활용할 계획이다. 앞서 600kg 이하 경량 항공기용 수소연료전지 기준은 지난해 12월 규제샌드박스 실증을 통해 이미 마련된 바 있다.
◇ AI 보안, 공유경제, 생활 밀착 과제도 포함
이번 심의에서는 2026년 기획형 1호 과제로 'AI 기반 실시간 보안위협 탐지·대응 기술'이 선정됐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네트워크 접속자의 정보 수집에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해 AI 보안 관제 데이터 확보에 한계가 있었지만, 이번 실증특례로 외부 전송 제한 등 안전장치를 전제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보안이 취약한 환경에서도 기업 핵심 기술과 고객 정보 유출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생활 밀착형 과제도 눈에 띈다. 시스톤 등 8개사는 하나의 사업장에서 여러 미용사가 시설과 장비를 공유하는 '공유미용실' 서비스를 실증한다. 현행 공중위생관리법은 1개 사업장 내 2명 이상 영업자가 각자 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해 공유 영업이 제한됐지만, 이번 특례로 창업 비용 절감과 소상공인 경영 활력이 기대된다.
오르노 합정점 등 5개사는 반려동물 동반 출입이 가능한 식품접객업소에서 반려동물용 메뉴를 제공하는 실증을 진행한다. 현행 사료관리법상 반려동물 음식 제조는 가축 사료 제조와 동일한 시설 기준을 적용받아 소규모 업소의 진입이 어려웠지만, 이번 실증을 통해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편의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 주류 자판기 임시허가, 융복합 건강기능식품도 허용
도시공유플랫폼, 신세계아이앤씨, 페이즈커뮤, 일월정밀 등 4개사는 주류 자동판매기 사업에 대해 임시허가를 받았다. 이들 기업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실증특례를 운영한 데 이어, 생체인증 도입, CCTV 설치, 심야시간 운영 단축 등 조건을 충족하면 유·무인 편의점에서 주류 자판기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풀무원헬스케어는 건강기능식품과 일반식품을 하나로 묶은 '융복합 건강기능식품' 제조·판매에 대해 임시허가를 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 중인 점을 감안해 개정 법률 시행 전까지 영업 지속성을 보장한 조치다.
◇ 폐플라스틱→수소, LPG 충전 효율화 등 산업 혁신
케이에스에너텍은 폐플라스틱을 고온 가스화해 수소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실증한다. 폐플라스틱 재생원료에 고온을 가해 합성가스를 만들고 여기서 수소를 추출해 인근 충전소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설비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HD현대중공업은 이동식 매니폴드와 유연호스를 활용해 트럭 고정 탱크에서 선박으로 LPG를 직접 충전하는 시스템을 실증한다. 기존에는 건조 중인 LPG 추진선의 시운전을 위해 선박을 육상 터미널까지 이동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이번 실증으로 조선 공정 효율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열 산업부 산업성장실장은 "AI 기반 서비스와 수소에너지 활용이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되면서 혁신과 시장 창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신기술 실증과 사업화를 적극 지원하고 제도 개선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승인된 26건의 규제특례는 실증특례 21건과 임시허가 5건으로 구성됐으며, AI·로봇 분야 3건, 국민생활 분야 18건, 에너지 분야 5건 등이다. 특히 기획형 과제로 선정된 AI 보안 과제는 오는 4월 산업부 홈페이지를 통해 실증사업자를 공모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