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며 글로벌 보험시장이 전쟁위험보험의 조건 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란과의 긴장이 격화된 상황에서 유럽항공안전청(EASA)이 이란 및 걸프 인접 공역에 대한 운항 자제 권고를 발표한 가운데, 해운 시장에서도 호르무즈 해협 주변 항로에 대한 위험 관리 조치가 연이어 시행되고 있다. 주요 해상보험사인 가드(Gard), 스컬드(Skuld), 노스스탠다드(NorthStandard), 런던 P&I 클럽(London P&I Club), 아메리칸 클럽(American Club) 등이 이란 수역과 페르시아만 일대에 대해 전쟁위험 담보의 제한 또는 취소를 추진하며 시장 전반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쟁은 일반 보험 약관에서 기본적으로 제외되는 항목으로, 막대한 동시다발적 손실 가능성을 감안할 때 보험사의 위험 통제가 불가피하다. 이에 항공 및 해상 운송 분야에서는 별도의 전쟁위험 특약을 통해 대응하고 있으나, 위험 상황이 급변할 경우 보험사는 계약 조건을 재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한다. 특히 항공 보험에서는 ‘7일 취소 조항’이 적용돼 보험사가 7일 전 통지로 향후 운항에 대한 담보를 종료하거나 조건을 변경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이미 발생한 사고에 대한 소급적 보장 철회가 아니라, 미래 위험에 대한 재평가 절차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약관상 취소 결정 이후에도 이미 비행 중인 항공기의 경우 첫 착륙 시점까지 보장이 유지되며, 해상보험 역시 시작된 항해에 대해서는 기존 담보가 존속되고 다음 항차부터 새 조건이 적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는 장거리 운송의 특성상 계약의 중단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으로, 보험사들은 완전한 담보 철회보다는 특정 해역 제외 또는 전쟁위험 추가보험료(Additional Premium) 인상을 통해 위험을 통제한다.
보험업계는 이러한 조치들이 전쟁 발생 시 보험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리스크 환경 변화에 따라 보험료와 담보 범위를 동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항공기는 미사일 공격 등 단일 사건으로도 수천억원대 손실이 가능해 신속한 대응이 요구되는 반면, 해상 운송은 장기 항해 구조상 점진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두 분야의 대응 방식 차이도 명확히 드러난다.
업계 전문가들은 “전쟁위험보험은 위험이 현실화되기 전까지의 상황을 보장하는 장치”라며, “보험사의 이번 조치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시스템적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정상적인 리스크 관리 절차”라고 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글로벌 보험시장의 위기 대응 메커니즘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