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마음 장사 이야기] 회사라는 외피를 벗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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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자신을 설명하는 데 점점 서툴러집니다. 이름 다음에 붙는 직함, 소속 회사, 맡고 있는 역할은 또렷이 말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껍데기를 잠시 내려놓고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 앞에 서면 문득 말이 흐려집니다.

바쁘게 살아왔고 성실히 버텨왔는데, 정작 나 자신이 누구인지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도, 깊이 고민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어느 방송에서 송길영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잠시 망설이다 ‘S사에 다닙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솔직히 그 질문의 뜻은 회사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어떤 생각과 고민 속에서 일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의 가치를 붙잡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직업’이 아니라 ‘소속’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보다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가 먼저였습니다. 회사와 자기 자신이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엉겨 붙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30년 넘게 직장인으로 살아왔지만, 정작“어떤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 앞에 서면 종종 말이 막히곤 합니다.

직함과 부서는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어도, 내가 어떤 태도로 일해왔는지, 무슨 기준으로 삶을 지탱해 왔는지는 쉽게 문장으로 엮이지 않습니다. ‘회사라는 이름의 외피를 하나씩 벗겨내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저 역시 잠시 머뭇거리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기 전에 어떤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을 너무 오랫동안 미루어 왔는지도 모릅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소설 ‘변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우리의 직장 생활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요? 하루하루를 성실히 통과하며 맡은 소임을 다하고 책임도 완수합니다.

그러나 그 하루들이 쌓여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숨 가쁘게 질주하지만, 정작 그 바쁨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들, 실패와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묵묵히 버텨온 시간 속에서 회사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증명할 언어를 가지고 나만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차분히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법 근사한 삶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어”, “지금은 회사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 “퇴직하면 그때 제대로 시작해볼 거야” 그러나 삶은 결코 그토록 친절하게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뗏목은 섬에 머물 때 만들어야 합니다.

섬을 떠난 뒤에는 뗏목을 만들 이유도, 재료도, 체력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있을 때, 가장 바쁘고 지쳐 있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의 최소한을 붙잡아야 할 때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시작하는 그 자체입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말했습니다. “진정한 관대함이란 현재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미래로 미루는 습관은 현재를 비워두는 일과 다름없습니다.

미래는 내일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선택과 태도가 모여 내일이 됩니다.

즉, 미래는 오늘 이 순간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사를 떠나면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 같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유 앞에서 우리는 더 쉽게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일의 리듬을 잃고,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놓치며,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마저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만의 중심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조직에 속해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어떤 기준으로 살 것인지,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지를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다듬어 가야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던질 “어떤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회사 이름이 아닌 나만의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출처: 한국보험신문 ✓ 협약 승인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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