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잡 설계사’ 확산… 영업 구조 변화가 만든 새로운 생존 전략
보험업계에서 이른바 'N잡러(다중 직업)' 설계사가 빠르게 늘고 있다. 보험 영업을 본업이 아닌 부업 형태로 병행하며 여러 수익원을 동시에 운영하는 설계사들이 증가하는 현상으로,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개인 선택이 아니라 보험 판매 구조 변화와 설계사 소득 구조 불안정이 결합된 결과로 보고 있다.
특히 법인보험대리점(GA)뿐 아니라 보험사들도 N잡 설계사를 새로운 영업 채널로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영업 환경이 확대되면서 시간과 장소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부업형 설계사 모델이 등장했고, 보험사 간 모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관련 조직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리츠화재의 '메리츠 파트너스'다. 해당 플랫폼은 2024년 말 약 4200명 수준이던 인력이 이후 빠르게 증가해 올해 1만명 이상으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의 평균 월 수입은 약 150만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다른 보험사들도 유사한 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N잡 크루'를 운영하며 부업 설계사 조직을 늘리고 있고, 롯데손해보험은 모바일 영업지원 플랫폼 '원더'를 통해 N잡 설계사 채널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손보의 경우 관련 인력이 약 4800명 수준으로, 전속 설계사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들이 이 같은 조직을 확대하는 이유는 비용 구조에 있다. 전속 설계사나 GA 조직과 달리 고정비 부담이 거의 없고, 지인 중심의 소액 계약을 통해 영업 접점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이나 실손보험 등 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상품을 중심으로 계약 건수를 확보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며, 보험사 입장에서는 사업비를 절감하면서 판매 채널을 넓힐 수 있고 설계사 입장에서는 본업과 병행해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설계사 유입 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설계사 시험 응시자 중 20대 비중은 감소한 반면 50~60대 응시자는 크게 늘었는데,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등 본업을 가진 사람들이 부업 형태로 보험 영업에 진입하는 사례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제도 변화도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내년부터 모집 수수료 4년 분급제가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기존 설계사들은 계약 초기 수당 비중이 높은 구조에 익숙한 만큼 분급제가 시행되면 직업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제도 시행 이후 기존 설계사의 최대 30%가 이탈할 가능성도 내부적으로 거론되며, 보험사들이 N잡 채널을 확대하는 배경에도 이러한 인력 공백 우려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 여건 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영업 경기 둔화로 추가 수입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보험 영업을 부업으로 선택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배달이나 대리운전처럼 육체 노동 강도가 높은 부업에 비해 보험 영업은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영업 방식 역시 변화하고 있다. 일부 설계사들은 온라인 채널을 활용해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유튜브(YouTube)'나 '인스타그램(Instagram)'을 통해 보험 분석, 약관 설명, 보험금 분쟁 사례 등을 소개하며 상담 고객을 유입시키는 방식이다. 광고 수익과 함께 온라인 상담 계약, 강의, 컨설팅 등으로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지역별로도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지방에서는 농업이나 식당 운영 등 자영업과 보험 영업을 병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농촌 지역에서는 농업 종사자가 설계사를 겸업하는 구조도 확산되는 추세다.
다만 N잡 설계사 확산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전체 설계사의 13개월 차 평균 정착률은 47.3% 수준이지만 N잡·비대면 설계사의 경우 약 37%로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충분한 교육과 경험이 없는 초보 설계사의 경우 복잡한 보장 구조나 세제까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워 전문성 부족과 불완전판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부업 특성상 상품 공부나 계약 이후 사후 관리(계약 변경, 보험금 청구, 리모델링 등)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제기된다. 고객 입장에서도 "부업 설계사에게 장기 계약을 맡겨도 되느냐"는 신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N잡 설계사 확산은 단순한 부업 트렌드가 아니라 보험 판매 구조 변화의 한 단면"이라며 "비대면 영업 확대와 수수료 체계 변화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모집 조직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