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은행이 이사회 내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를 신설하면서 은행권의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가 한 단계 격상되는 모습이다. 국내 은행들은 이미 금융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Chief Consumer Officer, CCO) 체계와 내부통제위원회, 소비자보호 전담조직 등을 운영해 왔다. 다만 최근에는 소비자보호를 영업 현장 관리 차원을 넘어 이사회와 그룹 차원의 핵심 의사결정 구조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번 변화의 직접적인 배경은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9월 제시한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이다. 금감원은 이사회가 소비자보호의 최종 의사결정기구로서 관련 전략과 정책을 승인하고,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 운영을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CCO에 대해서는 최소 2년 임기 보장, 이해상충 직무 겸직 제한, KPI 설계 등 핵심 사안에 대한 배타적 사전합의권과 개선요구권의 실질적 보장을 권고했다. 금감원이 지난해 1월 기준 주요 금융회사 75곳을 점검한 결과, 임직원 성과보상체계 등 소비자보호 핵심 사안을 이사회가 소극적으로 검토하거나 아예 검토하지 않은 사례가 42.7%에 달했다. 또 상당수 회사는 CCO 임기를 보장하지 않거나 1년만 보장하고 있었으며, 은행권의 소비자보호 내부통제 전담인력은 평균 16명이었지만 전체 임직원 대비 비중은 0.35%에 그쳤다. 금감원은 소비자보호 내부통제위원회 내 CCO의 서열도 은행권 평균 58.2% 수준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은행은 감독당국 모범관행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반영한 사례로 평가된다. 우리은행은 오는 20일 이사회 내 전문 소위원회 형태의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를 신설하고, 소비자보호 전문 이사를 포함한 3인 이상 체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위원회는 반기 1회 이상 정기 개최하며 소비자보호 관련 경영전략과 정책, 규정 제·개정 등을 심의한다. 동시에 CCO의 KPI 설계에 대한 배타적 사전합의권과 개선요구권을 부여하고, 소비자보호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실무협의회 중심 체계보다 한 단계 위인 ‘이사회 직접 관리’ 구조로의 전환으로 해석된다. 우리은행은 이미 올해 1월 금융소비자보호 내부통제기준을 개정해 내부통제위원회 안건 구분을 명확히 하고, 소비자보호 총괄부서의 역할을 강화했다. 이번에 신설되는 이사회 위원회는 이 기존 체계를 상위 단계에서 통제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른 은행들은 같은 방향이지만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KB국민은행은 최근 한국금융연구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 정책을 연구해 온 연태훈 선임연구위원을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사외이사추천위원회는 연 후보가 금융소비자보호 분야 연구를 통해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에 기여하는 등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나금융 역시 이사회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소비자보호 전문가 영입에 나섰다. 하나금융은 올해 서울대 소비자학과 최현자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올리며 소비자보호 분야 전문성을 보강했다. 다만 하나은행의 2024년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결과가 ‘미흡’으로 공시된 만큼 이사회 전문성 강화가 실제 내부통제 운영과 평가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신한은행은 고객 참여 기반의 소비자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신한은행은 2026년 고객자문위원 운영체계를 ‘신상품·서비스 분과’와 ‘소비자 권익·자산보호 분과’로 개편했다. 신상품 출시 전 사전 점검과 소비자 권익 보호 관련 제안, 출시 이후 이용 경험 반영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또 박현주 소비자보호그룹장이 연임하며 지주 소비자보호 부문까지 겸임하고 있어 그룹과 은행을 연결하는 CCO 컨트롤타워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NH농협금융은 그룹 협의체 중심의 소비자보호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농협금융은 올해 1월 지주와 전 계열사 CCO가 참여하는 금융소비자보호 협의회를 열어 그룹 차원의 거버넌스 강화와 실태평가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이어 농협은행도 금융소비자보호 추진 결의대회를 열고 상품 설계부터 판매,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의 사전 예방적 소비자보호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은행권 전반적으로 소비자보호를 영업 현장 관리 차원을 넘어 이사회 중심의 전략 과제로 격상시키는 흐름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거버넌스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우리은행의 사례는 향후 감독당국의 은행권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변화의 표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금융상품 기획부터 판매 이후 사후관리까지 소비자보호 관점을 이사회가 직접 관리하는 체계가 실질적으로 운영될 경우 다른 은행들도 유사한 형태의 거버넌스 구조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