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기획-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규제 ① 싱크홀·전동킥보드·온열질환까지… 시민안전보험의 진화

연중기획-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규제 ① 싱크홀·전동킥보드·온열질환까지… 시민안전보험의 진화

연중기획-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규제 ① 싱크홀·전동킥보드·온열질환까지… 시민안전보험의 진화

연중기획-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규제 ① 싱크홀·전동킥보드·온열질환까지… 시민안전보험의 진화
기후위기와 대형재난, 사이버공격과 인공지능(AI) 확산 등 새로운 유형의 위험이 보험을 넘어 금융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다. 리스크는 더 이상 개별 업권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으로 진화했고, 이에 대응하는 규제와 거버넌스 역시 전환기에 들어섰다. 한국보험신문 연중기획 '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규제'는 변화하는 위험의 실체와 정책·규제환경의 재편을 짚고, 보험을 중심으로 금융산업과 정부가 함께 모색해야 할 지속가능한 대응 방향을 살펴본다.
기후위기와 도시 환경의 변화가 일상 속 위험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폭염과 한파에 따른 온열·한랭질환, 도심 곳곳에서 발생하는 지반침하(싱크홀), 개인형 이동장치(PM) 사고까지, 과거 대형 재난에 국한됐던 위험 이외에 새롭게 등장한 도심형 위험도 일상의 영역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민안전보험' 역시 기존의 자연재해·교통사고 중심에서 벗어나 보다 세분화된 생활 밀착형 안전망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 '재난 보험'부터 '생활 안전망'까지
올해 들어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별로 특화된 지리적·환경적 위험 요소를 시민안전보험 보장 항목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지반침하(싱크홀) 사고를 시민안전보험 보장 항목에 포함했다. 도심 내 노후 인프라로 인한 싱크홀 사고를 사회재난과는 별개의 구조적 위험으로 정의하고, 사망이나 후유장해 발생 시 최대 2500만원까지 보장한다. 서울시는 2020년부터 시민안전보험을 통해 지난해까지 598건, 총 46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했으며, 대중교통 이용 중 사고, 스쿨존 교통사고 등 일상 사고 보장도 지속 확대해왔다.
기후 변화에 따른 온열·한랭질환도 주요 신규 보장으로 자리 잡았다.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기후보험'을 도입한 이래 폭염·한파로 인한 건강 피해를 보장하고 있으며, 울산 울주군·전주시·울산 북구 등도 시민(군민)안전보험에 열사병, 저체온증 진단비와 입원비 항목을 추가했다.
경기도의 경우 한랭질환에 따른 기후보험금 지급 건수는 지난해 12월 10건에서 올해 1월(23일 기준) 69건으로 급증했다. 빙판길 낙상 등으로 4주 이상 상해 진단을 받은 경우 지급되는 사고위로금도 같은 기간 48건에서 89건으로 늘었다. 경기도는 지난해 4월 기후보험 도입 이후 12월 말까지 총 4만5472건, 약 9억98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산불과 수해가 잦은 지역에서는 자연재해 보장 한도를 상향하는 흐름도 나타난다. 경남 의령군은 농기계 사고 상해 사망 보장을 최대 4000만원까지 확대했으며, 경남 양산시는 여름철 사고 빈도가 높은 '익사 사고' 항목을 새롭게 도입했다.
■ 전동킥보드·전동보조기기… 새로운 이동수단이 만든 위험
개인형 이동장치(PM)의 확산도 시민안전보험 확대의 주요 배경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 고양시 등 인구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전동킥보드 사고가 새로운 생활 위험으로 부상하면서, 관련 보장을 도입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인천시는 시민안전보험에 전동킥보드 사고 보장을 신설해 사망 시 1000만원, 후유장해 발생 시 최대 1000만원을 지급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인천 지역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는 2022년 74건, 2023년 71건, 2024년 75건으로 매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고양시 역시 PM 사고로 인한 사망·후유장해 보장을 신설했고, 서울 일부 자치구도 공유형 PM을 보장 대상에 포함했다. 사고 발생 빈도에 비해 제도적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보험을 통해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취지다.
고령화와 맞물린 전동보조기기 사고도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울산 울주군은 전동휠체어·전동스쿠터 이용 중 제3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고당 최대 5000만원까지 배상책임을 보장하는 별도 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이동권 확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위험을 제도권 안전망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 군 복무 청년·발달장애인까지… 보장 대상도 확대
보장 대상 역시 일반 시민을 넘어 특정 위험군을 겨냥한 정책 맞춤형 보험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전북 정읍시는 군 복무 청년을 위한 상해보험을 통해 상해사망·후유장해, 질병 사망, 입원비, 뇌졸중·급성심근경색 진단비 등 총 13개 항목을 보장하고 있다. 주민등록상 정읍시에 주소를 둔 현역 복무자는 별도 절차 없이 자동 가입되며, 다른 제도에 따른 보상과 중복 지급도 가능하다.
강원 속초시는 강원도 최초로 발달장애인 배상책임보험을 전면 도입했다. 속초시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지적·자폐성 발달장애인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별도 신청 없이 일괄 가입 방식으로 운영된다. 속초시는 이를 포함해 2026년 장애인 분야에 총 139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취약계층 보장항목을 임산부까지 확대했다. 한랭·온열질환 입원비와 기후특보일 2주 이상 상해진단비를 지원하고, 기상특보 발령 시 의료기관 방문에 필요한 통원비도 임산부에게 지급한다. 이와 함께 공공 동물 방역·진료를 담당하는 공수의사를 대상으로 단체상해보험을 지원해 현장 활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와 질병에 대비하고 있다.
■ 서울·경기 '촘촘', 재정 취약 지역은 '최소 보장'
다만 시민안전보험의 확대가 전국적으로 균등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안전보험은 지자체가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구조인 만큼, 재정 자립도에 따라 보장 수준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서울과 경기도는 싱크홀, 기후질환, PM 사고, 일상 상해 의료비 등 다양한 항목을 포괄하는 반면, 재정 여력이 부족한 일부 지자체는 핵심 항목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같은 경기도 내에서도 시·군별로 보장 항목 수와 한도 차이가 나타난다.
실제로 같은 충남권에서도 시민안전보험의 보장 격차는 상당히 크다. 천안시는 포괄적 상해의료비(100만원), 상해 사망 장례지원금(2000만원), 어린이 보행 중 교통사고 부상치료비(100만원), 자전거 사고 위로금(10만원) 등 제한된 항목 위주로 운영되는 반면, 공주시는 자연재난·화재·붕괴·폭발은 물론 대중교통, 농기계, 스쿨존·실버존, PM, 의사상자 피해까지 포괄하는 다담보 구조로 보장 범위를 크게 넓혔다. 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지자체 선택에 따라 시민이 체감하는 안전의 수준이 크게 갈리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규제의 시험대
행정안전부는 지자체 간 보장 편차를 줄이기 위해 '시민안전보험 운영 지침'을 마련하고, 자연재해·폭발·화재·붕괴 등 필수 가입 항목을 권고하고 있다. 다만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제 가입 여부와 보장 수준은 여전히 지자체 예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국회에서도 시민안전보험 제도 개선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7월 '시·도민 안전, 이대로 충분한가?' 정책간담회를 주최하고, 시민안전보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정보 접근성 개선과 제도 구조 개편 필요성을 제기했다. 다만 전국 지자체가 200곳이 넘고 보험사·지자체·정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입법 논의는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6일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를 위해 '시민안전보험·공제 가입정보 및 청구 안내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정보 연계와 표준화를 통해 보험금 청구 기간을 최대 50%까지 단축해, '있지만 쓰기 어려운 제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안전망'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경찰은 재난·사고·범죄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시민안전보험·공제를 안내하고,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아 주소지 관할 지자체에 전달한다. 행안부는 지방정부 담당자 교육과 협업 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재난보험 정보를 통합 조회할 수 있는 '재난보험24' 운영을 통해 안내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기후위기와 인구 구조의 전환이 가져온 새로운 위험 시대, 시민안전보험은 더 이상 시혜적 복지가 아닌 필수 사회 기반 안전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험을 매개로 한 공공 안전 체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그리고 지역 간 격차를 어떻게 줄이며 제도를 실효성 있게 작동시킬 것인지가 '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규제' 시대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