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사 ‘계리가정’ 재정비… ‘보수적 산출’ 가이드라인 제시
2023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도입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보험사들의 자의적인 '계리가정' 수립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보험사가 미래 이익을 부풀리기 위해 낙관적인 수치를 대입하던 관행을 끊어내고, 객관적이고 보수적인 기준에 따라 계리가정을 수립하도록 하는 종합 대책이 마련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험업권 계리감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보험상품의 계리가정 수립 단계부터 사후 관리·감독까지 전 과정을 뜯어고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핵심인 손해율·사업비 가이드라인은 올해 2분기 결산부터 즉시 적용되고 내부통제 강화 및 감독체계 정비는 2분기 중 시행될 예정이다.
■ '낙관적 가정'은 독… 중립·보수·비교가능성 3대 원칙 확립
IFRS17 체제하에서 보험부채는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할인율이나 손해율 같은 계리가정은 보험사의 부채 규모와 미래 손익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되는데, 그간 일부 보험사가 경험통계가 부족한 '신규담보' 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을 사용해 보험부채를 적게 잡고 당장의 실적을 좋게 포장해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도하게 낙관적인 계리가정은 리스크를 미래로 이연시켜 향후 보험사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손해율을 낮게 가정하면 보험부채가 과소 평가돼 상품 수익성이 부풀려지고, 이는 결국 고위험 상품의 과도한 판매 경쟁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이에 당국은 계리가정 수립의 대원칙으로 '최선추정(Best Estimate)' 방식을 명시하고, 이를 준수하기 위한 3대 세부 원칙으로 ▲중립성 ▲보수성 ▲비교가능성을 확립했다. 통계가 충분하면 중립적으로, 부족할 경우 불확실성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추정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 '이익 부풀리기' 봉쇄… 손해율 현실화 및 공통비 인식 확대
이번 가이드라인은 보험부채 과소평가 논란이 컸던 '손해율'과 '사업비 가정'을 현실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먼저 경험통계가 5년 이내인 신규담보에 대해 유사담보 손해율을 임의로 적용하던 관행을 금지하며, 앞으로는 '보수적 손해율(90%)'과 해당 신규담보를 포괄하는 상위담보의 실적 손해율 중 더 높은 값을 적용해야 한다. '비실손 갱신형 상품' 역시 미래 보험료의 대폭 인상을 전제로 부채를 낮게 평가하지 못하도록, 목표손해율을 보수적 손해율과 실적 손해율 중 높은 값으로 설정하게 했다.
보험사가 지출하는 사업비 가정 역시 투명해진다. 그간 일부 보험사가 누락했던 물가상승률을 원칙적으로 반영하도록 했으며, 자의적인 기간 단축을 통해 부채를 줄여온 '공통비(간접비)'는 원칙적으로 '전(全) 보험계약 기간'에 걸쳐 인식하도록 규정했다.
■ 산출 근거 문서화… '계리가정 보고서' 도입해 상시 점검
가이드라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내부통제와 감독 체계도 대폭 강화된다.
보험사는 앞으로 계리가정 산출 과정의 경험통계, 산출방법, 의사결정 체계 일체를 문서화해 관리해야 하며, 계리가정 변경 시 위험관리위원회 보고를 의무화하고 준법감시(또는 감사) 부서의 적합성 검증을 거치도록 했다.
당국 차원에서는 '계리가정 보고서' 제도를 신설한다. 매년 보험사로부터 가정 현황과 변경 이력 등 데이터를 표준화된 형태로 정기 보고받아 이상치를 분석함으로써 사각지대 없는 상시 점검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통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험부채 평가 관행이 확립될 것"이라며 "보험산업의 신뢰도를 제고하고 건전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