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우의 마음 장사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딸아, 너는 나의 봄이란다.
사진첩 깊숙한 곳에는 나를 살리는 문장 하나가 보물처럼 저장되어 있다. 몇 년 전 생일, 이제는 제법 어른의 눈빛을 갖게 된 큰딸아이가 보내온 짧은 메시지였다.
“아빠의 청춘에 ‘우리’라는 꽃을 피워줘서 감사합니다.”
그 문장을 처음 마주했던 날의 공기를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손에 쥔 휴대전화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고,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건만 주변이 온통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내 마음에는 소리 없이 봄이 찾아왔다.
50대는 화려한 성취보다 견디고 버티는 일에 익숙해지는 나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솔직히 ‘청춘(靑春)’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남의 옷처럼 어색해졌다. 거울 속의 나는 누군가의 아빠이자 부장님, 혹은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낡은 갑옷을 입고 서 있는 노병의 모습이다. 회식 자리에서는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눈치 보이고, 혹여 ‘말 많은 꼰대’로 비치지는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조직의 중심이라기보다, 그 거대한 무게를 묵묵히 떠받치는 기둥에 가까운 위치다.
그런 나에게 딸아이는 ‘꽃을 피워낸 청춘’이라며 따뜻한 응원을 건네준 것이다. 나는 가끔 푸르렀던 20대와 치열했던 30대의 내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생각에 잠기곤 한다. 눅눅한 야근의 불빛 아래서 녹초가 되어 돌아오고, 선배들과 술기운에 기대 잠들었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몸을 일으키던 출근길. 자존심을 접고 생계를 위해 고개를 숙이던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나의 청춘은 그저 소진되고 증발해 버린 것만 같았다.
꿈은 사치였고,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삶의 유일한 성적표였던 시간들. 그렇게 나는 ‘나’를 잠시 미뤄두고 ‘가장’이라는 역할로 먼저 살아냈다. 하지만 딸의 그 한마디는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나의 청춘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웠던 삼투압처럼, 나의 생에서 딸아이의 생으로, 더 낮은 곳에서 더 높은 곳으로 천천히 전이된 것이었다. 내가 미뤄두었던 꿈은 아이들의 넓은 선택지가 되었고, 내가 견뎌낸 고단함은 아이들의 단단한 자존감이 되었다.
나는 청춘이라는 계절을 기꺼이 거름으로 바쳐 ‘가족’이라는 정원에 ‘우리’라는 꽃을 피워냈다. 그러니 지난날은 그저 흘러가 버린 시간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게 쓰인 투자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아빠가 필요한 시기에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한 아쉬움, 그 시절 강퍅했던 아빠의 말과 행동으로 너희들이 입었을 상처를 생각하면 미안함이 앞선다.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고 싶구나.”
이제는 나보다 더 넓은 세상을 이야기하고 아빠의 어깨를 토닥일 줄 아는 딸들을 보며, 나는 더 이상 굽어가는 나의 뒷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중력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거울 속에서 흘러내리는 주름과 처진 어깨는, 내가 피워낸 꽃들이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매일같이 갈아엎은 마음의 고랑이기 때문이다.
50대 직장인의 삶은 화려한 무대 위의 주인공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대를 지탱하는 스태프의 삶에 가깝다. 반복되는 루틴과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이 우리를 지치게 할지라도, 우리가 묵묵히 일궈낸 그 터전 위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낸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50대의 삶은 충분히 문학적이며 숭고하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몇 년 전 무심코 던진 그 문장은 여전히 아빠를 살게 하는 동력이란다. 오늘도 아빠는 출근을 위해 문을 나서지만, 마음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처럼 평온하단다. 나의 청춘을 온전히 바쳐 너희라는 꽃을 피울 수 있었으니, 아빠의 인생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만개한 봄이다. 지는 꽃을 슬퍼하기보다 맺힌 열매와 남은 향기에 감사하며, 아빠는 오늘도 기쁘게 나의 정원으로 걸어간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너는 나의 영원한 봄이란다.”
김태우 센터장
한화생명 WM전략팀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한국보험신문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