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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정담] 황새는 날아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문안정담  황새는 날아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문안정담 황새는 날아서 달팽이는 기어서

“황새는 날아서 / 말은 뛰어서 / 거북이는 걸어서 / 달팽이는 기어서 / 굼벵이는 굴렀는데 /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가 되면 으레 이 시구(詩句)가 떠오른다. 리듬이 경쾌하고 희망적이다. 하늘을 나는 황새나 빨리 달리는 말만 먼저 도착해 있지 않고, 달팽이도 굼벵이도 함께 출발선에 설 수 있다는 메시지는 더 각별하다. 광화문글판 겨울편에서도 이 시구를 인용한 바 있다.

지난 연말에 송년회 겸 밴드 공연이 있었다. 연습실을 벗어나 첫 무대가 펼쳐졌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했어도 데뷔라는 긴장감, 박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강박이 템포와 리듬을 방해했다. 객석에 앉아 환호성을 올리고 박수를 보내는 친구들은 한날 입학을 하고 한날 졸업한 동창들인데, 지금 서로를 바라보면 많이 달라져 있음을 확인한다. 걸어온 여정도 다르고 외모도 세월의 무게 앞에서 앳된 원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똑같이 출발한 친구들도 이러한데, 황새나 말, 달팽이 굼벵이처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함께 출발선에 도착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캐나다의 엘리트 아이스하키 선수들 중 1월, 2월, 3월 초에 태어난 선수들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이례적인 통계를 제시했다. 캐나다의 유소년 하키 리그 선수 선발 기준일이 대개 1월 1일이기 때문인데, 생일이 빠른 아이들은 늦은 아이들보다 몇 달 더 성장한 상태이므로 신체적으로 더 크고 힘이 셀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신체적 이점 때문에 생일이 빠른 아이들은 잠재력이 더 크다고 평가받아, 더 많은 경기에 출전 기회를 얻고 더 나은 코치, 더 집중적인 훈련이라는 추가적인 기회도 얻게 되었다. 이 같은 혜택이 반복되면서, 몇 년 후에는 재능의 차이가 아닌 기회의 차이로 인해 실제 실력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꼭 선천적인 재능만으로 성공하는 건 아니며, 방대한 양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차르트조차도 위대한 걸작을 만들기까지 수십 년의 작곡 연습 시간이 필요했다. 글래드웰은 이 1만 시간을 ‘성공의 마법 숫자’로 표현했는데, 이는 하루 3시간씩 매일 연습했을 때 약 10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 법칙의 가장 중요한 맥락은 단순히 ‘노력하면 된다’는 자기 개발 메시지가 아니다. 글래드웰은 책 전체를 통해 1만 시간을 연습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얻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지원, 시대적 배경, 사회적 시스템 등 환경적 요인이 뒷받침되어야만 그 엄청난 시간 투자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성공이 개인의 뛰어남보다는 주어진 기회의 결과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1만 시간의 법칙(The 10,000 Hours Rule)’은 원래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의 연구에서 대중화된 것인데, 그는 단순히 시간의 양뿐만 아니라 어떻게 연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봤다. 비근한 예로 빌 게이츠와 비틀즈가 있다.

빌 게이츠의 사례는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성공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빌 게이츠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가 다니던 시애틀의 사립학교는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컴퓨터 터미널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대학생조차 컴퓨터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13세의 어린 게이츠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자유롭게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수천 시간의 코딩 경험을 쌓았고, 하버드 대학을 중퇴할 무렵에는 이미 ‘1만 시간’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비틀즈의 성공 또한 그들의 재능만큼이나 독특한 환경 덕분이다. 비틀즈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훨씬 전에 독일 함부르크의 허름한 클럽들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었다. 이 클럽들은 밴드에게 하루에 8시간씩, 주 7일 내내 무대에서 연주할 것을 요구했는데, 리버풀에서는 한 시간 정도만 공연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양이다. 이 기간 동안 비틀즈는 약 1200회 이상의 라이브 공연을 통해 1만 시간을 훌쩍 넘기는 연습량을 쌓았다. 이를 통해 지구력, 규율, 그리고 독특한 음악적 레퍼토리를 개발할 수 있었고, 이는 다른 밴드들과 차별화되는 그들만의 사운드를 만드는 결정적인 기반이 됐다.

결론적으로, 비틀즈의 성공은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덕분에 압도적인 연습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환경과 기회의 산물이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는 희망적인 시구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말콤 글래드웰의 분석과 빌 게이츠, 비틀즈의 사례는 이 시 뒤에 숨겨진 냉엄한 현실 또한 마주하게 한다.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노력하면 된다’는 막연한 독려보다는 황새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달팽이조차도 끝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일이다. 새해에는 스스로 능동적인 주체가 되도록 힘써 보자.

박치수

청주대학교 교수

前 교보생명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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