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력 중심의 사회로 전환하는 ‘전기국가(electro-state)’로의 도약을 본격화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전문 규제기관인 전력감독원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7월 22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지혜·서왕진 의원실과 공동으로 ‘전력 거버넌스 혁신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부는 지난 6월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번 토론회는 하반기 전기사업법 개정 논의에 앞서 국회·정부·전문가·국민 간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지난 4월과 5월에 이어 네 번째다.
하지만 전기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전력계통을 규율하는 기술기준, 즉 그리드코드(grid code)를 선제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태양광·풍력 같은 분산자원과 AI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전력 소비 시설이 급증하면서 이들이 지켜야 할 기준을 정비하고, 이행 여부를 검증할 체계가 필요하다. 전력 시스템의 주력 전원이 전통적인 회전식 발전기(동기발전기)에서 전력전자장치(인버터)로 바뀌고 있지만, 규범 체계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 결과 출력제어 횟수는 2024년 27회에서 2025년 82회로 3배 늘었고, 제어량은 12.4GWh에서 109.4GWh로 9배 증가하는 등 계통 안정성 유지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전력시장 감시 체계도 시장의 다원화에 맞춰 개선이 시급하다. 민간 사업자가 폭증하면서 전력시장 참여자는 2001년 19개사에서 2026년 8천여 개로 늘었다. 한국전력공사와 직접 거래하는 설비(한전 PPA)도 18만 개를 넘어섰고, 직접전력계약(직접 PPA), 구역전기사업, 통합발전소(VPP), 분산에너지특구 등 새로운 거래 형태가 등장해 시장 구조는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감시하는 주체는 전력거래소 내 소규모 조직에 그치고, 장내 거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방대한 거래를 독립적으로 감시할 역량이 부족하다. 시장의 공정성이 취약해지고 감시 사각지대도 늘고 있다.
전력 데이터 관리 체계도 문제다. AI 기술 확산으로 전력 데이터 활용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기관마다 데이터 정의·분류 체계, 공개 주기·방식이 달라 통합과 학습이 어렵다. 데이터 제출을 요구하고 품질을 검증·표준화하며 안전한 개방 기준을 정할 총괄 주체가 없다. 그 결과 전력 분야 AI 활용은 더디고 관련 신산업도 출발선에 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이런 과제에 대응할 전문 규제기관으로 전력감독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전력감독원의 주요 역할은 세 가지다. 첫째, 기술기준(그리드코드)을 선제적으로 개선하고 이행을 감독한다. 둘째, 전력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고 시장 제도를 평가한다. 셋째, 전력 데이터의 관리와 공개 체계를 운영한다. 이를 통해 정책(기후에너지환경부), 심의·의결(전기위원회), 조사·감독(전력감독원), 집행·운영(전력거래소·한전)으로 이어지는 4단 구조를 갖춘다는 구상이다.
이날 토론회 발제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왔다. 송승호 광운대 교수는 ‘기술기준 고도화와 전력 거버넌스 혁신’ 발표에서 국내 기술기준이 내용의 성숙도에 비해 개정 시기와 적용 시점이 맞지 않고, 미이행 시 처벌 규정이 모호해 실행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전문 규제기관 중심의 관리·이행 체계를 제안했다.
정구형 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력신사업 확대와 전력시장 변화 방향’에서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해외 사례를 분석하며, 독립 규제기관 설립과 송전계통운영자(TSO)-배전계통운영자(DSO) 협조 체계 구축이 전력신사업 안착의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효 KAIST 교수는 ‘전력정보 투명성 제고를 위한 거버넌스 개편’ 발표에서 분산된 공개 채널과 불명확한 책임 범위가 운영기관의 보수적 대응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개 기준 제도화와 면책·오류정정 원칙을 갖춘 ‘관리된 공개’ 체계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김창섭 전기위원회 위원장은 “전기국가로 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를 감당할 규칙과 공정한 심판이 절실하다”며 “지금은 시장에 뛰어든 선수가 수십만에 이르는데도 규칙은 낡고 심판의 공정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기술기준을 선제적으로 개선하고, 시장을 공정하게 감시하며, 전력 정보를 투명하게 여는 일을 책임질 독립기구가 필요하다”며 “전력감독원 신설이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번 토론회에서 제시된 의견을 바탕으로 하반기 국회 논의를 적극 지원해 전력감독원 설립을 위한 전기사업법 개정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전기국가로의 도약을 가속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