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한국을 거치는 모든 석유제품을 국내에서 원하는 대로 섞어서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관세청은 환적(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왔다가 다시 해외로 나가는) 석유제품을 국내 탱크 터미널에서 혼합·제조(블렌딩)한 뒤 수출할 수 있는 특례 절차를 마련하고, 관련 고시를 7월 20일부터 개정·시행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여수와 울산을 중심으로 석유제품을 보관하고 블렌딩할 수 있는 대규모 탱크 터미널(종합보세구역)이 갖춰져 있다. 또 동북아나 미주 등 대규모 소비지로 운송하기에도 유리해 국내외 석유 업체들의 보관 수요가 꾸준히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환적 석유제품은 해외로 다시 나갈 예정인 단순 보관 물품으로만 인식돼 블렌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석유 업체들은 국내에 보관 중인 환적 석유제품을 블렌딩해 팔고 싶다면 해외 탱크 터미널로 옮겨 작업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블렌딩은 국가별·용도별 환경 기준과 원료 특성을 고려해 수요자 맞춤형 상품을 만드는 최적화 공정이다. 석유 업체는 이를 통해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관세청은 최근 석유 업체들이 국내 탱크 터미널에서 블렌딩 작업을 희망하는 의견을 내고, 중동 정세 이후 안정적인 수출길 확보를 위해 석유제품과 원유를 역외(외국)가 아닌 국내에 보관하려는 관심이 높아진 점을 고려해 이번 특례를 도입했다.
구체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블렌딩 계약을 증빙한 뒤, 블렌딩할 분량에 한해 사용 신고를 한다. 이후 블렌딩을 완료하면 전량을 수출해야 한다. 이번 제도는 지난해 1월 국내산 석유제품을 종합보세구역에 반입하면 수출로 간주해 과세 문제를 해소한 데 이어, 국내 블렌딩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후속 조치다.
실제로 제도 개선 이후 석유 블렌딩 수출은 빠르게 늘고 있다. 2023년 7,791억 원이었던 수출 실적은 2024년 1조 282억 원, 2025년 2조 1,823억 원으로 급증했으며, 2026년 상반기에는 1조 6,511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2025년 실적은 전년 대비 112% 증가한 수치다.
이번 특례가 시행되면 환적 석유제품을 활용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수입 제품끼리, 수입과 국내산, 국내산끼리만 블렌딩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환적 석유제품도 자유롭게 투입할 수 있다. 즉 수입 제품과 환적 제품, 국내산과 환적 제품, 환적 제품끼리도 블렌딩이 가능해져 조합의 폭이 크게 넓어진다. 이에 따라 보관·블렌딩·운송 등 석유제품 산업 전반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업계는 탱크 터미널과 해운·항만 이용 증가 등을 고려해 연간 62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제3국에 보관 중인 석유제품의 블렌딩 수요를 국내로 유치하고, 보관 수요가 다시 늘어나는 선순환 효과도 예상된다.
이진희 관세청 통관국장은 "선박 연료유의 황 함량 제한, 지속가능한 항공유 사용 등 친환경에너지 규제가 강화되면서 석유제품 블렌딩 수요도 함께 늘어날 것"이라며 "이번 특례 절차가 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변화하는 물류·산업 환경에 적극 대응해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