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을 이승만 대통령의 말과 글에서 해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장관은 1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61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광화문에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앞날을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 국가 발전으로 모을 수 있을까 고민"이라며 국민통합 의지를 밝혔다.
권 장관은 "해방 정국에서 국가를 이끌었던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선생 두 분 모두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헌신했고 방향과 목표도 같았지만, 방법이 조금 달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하신 말씀과 쓰신 글에 기초해 현재 각 진영 간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장관은 특히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를 위해 권 장관은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가 격 없이 소통할 것을 제안했다. 두 단체는 각각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이날 추모식은 (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으며, 권 장관을 비롯해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협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국민의례, 추모 식사, 추모사, 건국기념사 낭독, 추모 노래, 추모 합창, 헌화, 묘소참배 순으로 진행됐다.
한편 권 장관은 국민통합 의지 차원에서 18일 오전 윤보선 전 대통령 서거 36주기를 맞아 충남 아산에 위치한 묘역을 찾아 헌화·참배하고 생가를 둘러봤다. 또한 20일 오전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부인인 홍기 여사 서거 22주기를 맞아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을 찾아 헌화·참배할 예정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를 조직하고 독립협회에서 독립민권사상을 고취했다. 1898년 내각 중심제 정부 조직 계획에 가담해 징역 7년을 선고받았고, 옥중에서 독립정신 등을 저술하며 5년 6개월 이상 옥고를 치렀다.
1905년부터 미국에서 워싱턴대학교 학사, 하버드대학교 석사, 프린스턴대학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10년 귀국했다. 1913년 미국 하와이에서 한인중앙학원을 인수 운영하며 태평양잡지를 창간했고, 1918년 대한인국민회로부터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로 임명됐으나 여행권 발급이 거부돼 참석하지 못했다.
1919년 4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추대됐고, 같은 해 8월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해 외교운동과 독립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임시정부 전권대사로 한국 독립 문제를 의제화하려는 외교 활동을 전개했다.
1933년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서 한국 독립 문제를 환기시켰고,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후 구미위원장으로 미국 정부에 임시정부 승인을 요구했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 국제연합 창립총회에서는 한국대표단 단장으로 임정 대표 참석을 요구하는 외교 활동을 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