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상장사가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하는 '중복상장'이 대폭 까다로워진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7일 모회사 일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중복상장 규제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엄격한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중복상장은 일반주주에게 불리한 구조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상장사 간 지분보유 비율은 전체 시가총액 대비 11.2%로, 미국(0.05%), 일본(4.0%), 중국(2.4%), 대만(2.7%)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이는 모회사 이사회가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일반주주 보호에 소홀했던 관행이 반영된 결과다.
기존에는 모회사 이사회가 '자회사 상장은 자회사 이사회 결정사항'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상장 심사도 분할 상장의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 기준만 적용돼 주주 권익이 침해될 우려가 컸다. 금융위와 거래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 3월 '자본시장 체질 개선 방안'에서 정책 방향을 발표한 후, 3차례의 공개 세미나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거쳐 이번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새로운 규율의 핵심은 모회사 이사회에 '주주충실의무'를 구체화한 5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첫째, 중복상장이 주주에게 미칠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둘째, 자회사 주식 현물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주주보호 방안을 마련한다. 셋째, 주주와 소통해 의사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주주총회에서 동의를 받는다. 넷째, 이사회가 찬반 결의를 하고 결과를 자회사에 통보한다. 다섯째, 이행 사항을 단계별로 공시해야 한다.
특히 모회사 이사회는 독립적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이 과정을 사전에 심의·의결하도록 했다. 특별위원회는 3인 이상의 이사 또는 사외이사(독립이사) 요건을 갖춘 외부전문가로 구성되며, 사외이사가 위원장을 맡거나 사외이사와 외부전문가가 2/3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이 5대 의무는 자회사를 해외 거래소에 상장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의무를 위반하면 제재도 강력해진다. 이사회 의무 위반 시 최대 10억원의 제재금과 1일 매매거래정지 조치가 내려진다. 공시 의무를 위반하면 제재금과 함께 벌점이 누적돼 상장폐지 심사 사유가 될 수 있고, 불성실공시 지정 사실도 공시된다.
중복상장 심사 기준도 대폭 강화된다. 우선 자회사가 모회사로부터 영업·경영의 독립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자회사의 주된 영업이 모회사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주요 경영 의사결정이 모회사에서 이뤄지면 독립성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모회사 투자자 보호 요건도 새로 도입된다. 모회사 이사회의 5대 의무가 충실히 이행되고 찬성 결의가 이뤄져야 하며, 일반주주 보호 필요성에 상응하는 노력을 했는지 심사한다. 가장 직접적인 보호 방법은 주주동의를 받는 것이므로, 주주동의를 원칙적으로 권고한다.
주주동의 인정 기준은 상법상 감사위원 선임에 준하는 '3%룰'을 적용한다. 3%를 초과하는 의결권은 제한하고, 참석 지분의 과반과 전체 의결권 대비 4분의 1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적용 방식은 자회사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물적분할한 자회사는 주주동의가 필수다. 일반 자회사는 주주동의를 받으면 보호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추정하고, 동의가 없으면 엄격한 개별심사를 받는다.
저비중 자회사는 예외가 적용된다. 매출, 영업이익, 자산이 모두 모회사 대비 10% 미만인 경우 모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주주동의가 없더라도 이사회가 5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찬성 결의를 하면 보호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본다. 다만 예상 기업가치를 고려해 중요 자회사로 인정되면 주주동의 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번 기준은 상법상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를 기반으로 홍콩·대만 등 해외 중복상장 규율과 미국 델라웨어 판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됐다. 미국의 경우 이사회의 신인의무(fiduciary duty)와 관련해 독립적 특별위원회 승인이나 소수주주 과반 동의(MoM)를 충족하면 의무를 준수한 것으로 판단한다.
중복상장 규율의 적용 범위는 상장 모회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경제적 동일체인 비상장회사를 상장하는 경우다. 구체적으로 외부감사법상 종속회사(연결재무제표 대상)와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 중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회사가 해당된다. 수직적 지배관계는 모회사가 지분 20% 이상을 소유한 계열회사나 해당 계열회사가 다시 지분 50%를 초과해 소유한 계열회사(손자·증손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번에 발표된 한국거래소 규정 개정안과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제정안은 오는 7월 14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친 후,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정례회의 의결을 통해 최종 시행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제도가 시행되면 모회사 일반주주의 권익이 보호되고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