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선생 서거 제77주기 추모식 26일 개최

국가보훈부는 오는 26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백범 김구 선생 서거 제77주기 추모식이 열린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추모식은 (사)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박유철) 주관으로 진행되며,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협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3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추모식은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추모 식사, 추모사, 추모가, 헌화 순으로 엄숙하게 진행된다. 백범 김구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해 항일운동에 투신한 이후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민족 통일에 바쳤다. 1919년 3·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특히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고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을 주도해 항일무장투쟁의 기반을 마련했다.

선생은 광복 후 민족 분단을 막고 자주적 통일국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으며, '문화의 힘'으로 세계에 기여하는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권오을 장관은 “김구 선생은 한평생 오직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주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우리 겨레의 큰 스승”이라며 “정부는 유네스코 지정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해와 서거 77주기를 맞아 선생의 숭고한 생애와 정신을 미래 세대에 온전히 계승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백범 김구 선생은 1893년 동학에 입도한 후 1894년 팔봉 접주로 임명되었고, 동학군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공략해 탐관오리들을 추방하려 했으나 관군에 패했다. 1896년에는 일본군 중위를 처단하고 ‘국모의 원수를 갚았다’는 포고문을 남긴 뒤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광무황제의 특명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후 을사조약 체결 후 구국운동에 앞장섰고, 1908년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1919년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경무국장에 취임했다.

1924년 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 1926년 국무령에 오른 선생은 1928년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1931년 한인애국단을 창단해 단장을 맡았다. 1940년 중경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식을 거행했고, 임시정부를 기강으로 옮긴 뒤 각 독립운동 단체를 통합해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1945년 환국 후에는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주도했으며, 1947년 제2차 미소공위 시 반탁 투쟁을 이승만과 함께 추진했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으며,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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