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결식아동을 위해 지급하는 급식카드가 본래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는 사례가 곳곳에서 적발됐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추진단과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 182개 지방자치단체의 급식카드 운영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급식카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 18세 미만 아동이 음식점 등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발급하는 카드다. 2025년 기준 약 15만 명의 아동이 이 카드를 이용하고 있으며, 1식당 1만 원 이상이 지원된다. 전체 예산은 5621억 원으로 모두 지방비로 충당된다.
조사 결과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급식카드로 술과 담배를 구매한 사례가 확인된 점이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서울·인천·부산·광주를 제외한 13곳에서 급식카드로 술이나 담배를 산 내역이 적발됐다. 이들 4개 지역은 일반마트의 급식카드 가맹점 등록을 최소화해 문제를 예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의 경우 결제시스템을 통해 술·담배 구매를 기술적으로 차단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일반마트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어 아무런 제재 없이 급식카드로 주류나 담배를 살 수 있었다. 실제로 한 초등학생 자녀의 급식카드로 담배와 세제·휴지 등을 한꺼번에 27만 원어치 구매한 사례가 적발됐다.
더 나아가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가 자신의 가게에서 급식카드 충전금 전액을 허위 결제하거나, 마트 업주와 공모해 카드를 마트에 맡겨두고 생활용품을 대량 구매하는 편법도 확인됐다. 한 분식집을 운영하는 부모는 중학생 자녀의 급식카드로 2022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1295만 원을 허위 결제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부모 6명이 인근 마트에 급식카드를 맡기고 일일 한도 4만 원씩 허위 결제한 뒤 실제로는 29만 원 상당의 생활용품을 사는 수법으로 총 1100만 원을 부정 사용했다.
급식카드는 아동의 식사 외 업종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전체 발급카드의 약 14%인 2만 2000장이 1회 이상 식사와 관련 없는 업종에서 결제됐다. 카페에서 11억 원, 학원·병원·미용실 등 생활시설에서 1억 4000만 원, 술집에서 700만 원, PC방·만화방 등 오락시설에서 500만 원이 사용된 것으로 집계됐다.
심야시간 사용도 심각했다. 일반적인 식사 시간이 아닌 밤 10시부터 아침 6시 사이에 결제된 금액이 전체 급식카드 결제액 2096억 원의 4.4%인 약 93억 원에 달했다. 심야시간 결제는 편의점(40억 원), 일반음식점(37억 원), 카페(3억 2000만 원) 순으로 많았다.
급식카드 발급과 자격 변동 관리도 허술했다. 지방자치단체는 보건복지부 표준매뉴얼에 따라 지원 아동을 복지정보 통합시스템인 '행복e음'에 등록해 상시 관리해야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등록 없이 별도 시스템만으로 관리해 가상의 이름으로 카드를 발급하는 일도 가능했다.
또 아동이 시설에 입소하거나 사망, 학교 졸업 등의 변동이 생겨도 적시에 카드 사용이 정지되지 않았다. 아동학대로 보호시설에 입소한 자녀의 급식카드를 부모가 8개월간 자신의 식사비로 사용한 사례(약 200만 원), 아동 사망 후에도 급식카드가 계속 사용된 사례(약 61만 원)도 적발됐다. 이런 부적정 사용은 총 14명, 약 550만 원에 달했다.
급식카드에 충전된 금액을 제대로 쓰지 못해 소멸되는 경우도 많았다. 2024년 기준 충전액 중 사용되지 않고 없어진 금액이 총 171억 원으로 전체 충전액 2207억 원의 7.8%를 차지했다. 충전금의 10%도 사용하지 않은 아동이 4800여 명에 달했다. 미사용 원인으로는 카드 사용시 아동이 느끼는 낙인감 우려와 사용 방법을 몰라서가 주요 이유로 꼽혔다.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세 가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했다.
첫째, 급식카드의 아동 식사 목적 외 사용을 막기 위해 카드사와 협의해 일반마트에도 술·담배 등 금지 품목의 결제를 제한하는 시스템을 확대한다. 소형 마트처럼 시스템 도입이 어려운 곳은 허위 결제나 생활용품 구매 내역을 수시 점검하는 체계를 만든다. 또 술집 등 부적정 업종은 가맹점 등록을 자동 제한하고, 심야시간 사용도 제한할 예정이다. 부모의 부정 사용에 협조한 가맹업주는 가맹점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둘째, 급식카드 발급과 자격 변동 관리를 강화한다. 보건복지부는 지침을 개정해 카드 발급 후 '행복e음' 시스템 등록을 의무화한다. 아동의 시설 입소·사망·졸업 등 변동 사항을 담당자가 신속히 확인할 수 있도록 알림 기능을 연내 개선하고, 카드 발급 시스템과 '행복e음'의 정보 연계도 지원한다. 부모의 부정 사용이 의심되거나 장기 미사용 아동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정기적으로 점검하도록 하고, 담당자 정기 교육도 마련한다.
셋째, 아동의 식사권이 충분히 보장되도록 카드 사용 방법과 미사용 잔액 안내를 강화한다. 카드 발급시 사용 방법을 사전에 상세 안내하고, 사용액이 적은 가구에는 문자 알림 등을 통해 잔액 사용을 독려한다. 낙인감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이미 지난해 8월 전국 182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카드 디자인 점검을 실시해 불필요한 낙인 요소를 개선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일반 카드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을 아동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별도 안내할 계획이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추진단장은 "지방자치단체가 급식카드 발급에만 치우쳐 관리에는 소홀한 부분이 확인됐다"며 "새로운 지방정부가 시작되는 만큼 아동급식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급식카드의 장점도 있지만 도시락·반찬 배달 등 급식지원 제도 취지에 더 부합하는 대안 검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수엽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아동급식카드 본래 취지에 맞게 부적절한 품목 결제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가맹점을 지속 확대하겠다"며 "아동이 이용 가능한 식당이나 잔액을 몰라 지원금이 방치되지 않도록 사용자 맞춤형 안내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또 "행복e음 시스템을 정비해 대상자 자격 변동 여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히 협력해 아동급식카드가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관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