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이 아프리카 15개국에 71개의 벼 품종을 개발·보급하고, 23개국에서 44명의 벼 육종가를 양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의 선진 벼 재배 기술이 아프리카 대륙에 ‘녹색혁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국제기구인 아프리카벼연구소(AfricaRice)와 함께 추진한 ‘아프리카 벼개발 파트너십’ 1단계(2016~2025년)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사업은 아프리카의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고품질 다수확 벼 기술을 전수하는 프로젝트다.
쌀은 아프리카에서 옥수수 다음으로 중요한 식량작물로, 54개국 중 39개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벼 생산성은 헥타르(ha)당 평균 2.4톤에 불과해 아시아(5.0톤/ha)의 절반 수준이다. 병해충에 약한 품종과 낙후된 재배 기술, 부족한 기반 시설이 주요 원인이다. 여기에 인구 증가와 도시화로 매년 쌀 수요가 6% 이상 늘면서 39개국 중 21개국은 소비량의 50~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파시(KAFACI, 한-아프리카 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를 통해 ‘아프리카 벼개발 파트너십’을 가동했다. 사업의 핵심은 한국의 ‘통일형 벼품종’과 ‘약배양(꽃가루배양)’ 기술을 활용해 육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개발된 71개 품종 대부분은 ha당 6.6~6.8톤의 높은 수확량을 기록했으며, 부드러운 밥맛과 향까지 갖춰 현지 농업인과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성과는 가봉에서 나왔다. 그동안 자체 벼 품종이 전혀 없었던 가봉은 ‘셰이(CHEYI)’, ‘음보마(MBOMA)’, ‘무카파시(MOUKAFACI)-1’ 등 3개 품종을 지난해 8월 가봉 최초의 벼 품종으로 등록했다. 이 품종들은 한국의 통일형 벼인 ‘밀양’과 ‘한아름’을 활용해 육종했으며, ha당 7~8톤의 수확량에 도열병에도 강하다. 가봉농업임업연구소(IRAF)의 욘넬 무쿰비 박사는 “올해 3개 품종의 종자 약 9톤 확보를 목표로 증식하고 있으며, 80명의 벼 재배 전문 인력을 양성 중”이라며 “전국 60개 농업협동조합 1,100여명의 농업인이 ‘셰이’ 품종을 중심으로 시험 재배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세네갈에서는 ‘이스리(ISRIZ) 6, 7, 16, 17, P01, P02’ 등 6개 품종이 개발·보급됐다. 이 중 ‘이스리 6’과 ‘이스리 7’은 각각 한국의 ‘밀양23호’와 ‘태백’ 품종이 현지에 적응해 세네갈 자국어로 이름을 지어 등록한 경우다. 수량이 ha당 7.2~7.5톤으로 세네갈 대표 품종 ‘사헬(Sahel)’보다 2배 이상 많고 밥맛도 좋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카파시는 회원국들이 자체적으로 벼 품종을 개발할 수 있도록 ‘벼 육종가 양성훈련’도 병행했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4개월간의 집중 훈련을 통해 23개국에서 총 44명의 전문 육종가를 배출했다. 이는 ‘K-벼재배기술’을 전수하는 동시에 회원국 간 벼 재배 기술 수준을 평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2023년부터 ‘아프리카 K-라이스벨트’ 사업을 시작했다. 세네갈, 감비아, 기니, 가나, 카메룬, 우간다, 케냐 등 7개 거점 국가에 다수확 벼 종자 생산 단지와 기반 시설을 조성해 우량 종자를 아프리카 전역으로 신속히 보급하는 것이 목표다. 농촌진흥청은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을 통해 현지 농업 관계자와 협력, 우량 종자 생산과 재배 기술 전수, 농업인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로 ‘K-라이스벨트’ 사업의 종자 생산량은 2023년 2,321톤에서 2024년 3,562톤, 2025년 6,365톤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27년부터는 연간 우량 종자 1만 톤 생산을 목표로 한다. 이는 약 22만 3천 헥타르에서 재배할 경우 연간 216만 톤의 쌀을 생산할 수 있는 양으로, 아프리카 3천만 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규모다.
농촌진흥청은 올해부터 ‘아프리카 벼개발 파트너십’ 2단계 사업에 돌입한다. 1단계에서 관개답(물을 댄 논) 위주의 품종을 개발했다면, 2단계에서는 가뭄·냉해·염해 등 재배 환경이 열악한 천수답(비에 의존하는 논)이나 밭에서도 잘 자라는 품종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1단계에서 개발한 품종들을 국가 자원화하기 위해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에 기탁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현재까지 46개 품종이 기탁됐으며, 나머지 품종들도 단계적으로 추가될 예정이다.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 최광호 국장은 “아프리카 벼개발 파트너십 사업 성과는 아프리카의 숙원인 쌀 자급자족과 식량안보의 발판을 마련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앞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K-벼재배기술’을 바탕으로 많은 개발도상국의 식량 문제 해결을 돕고,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