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성경(聖經)과 역경(易經)으로 대립한 로마와 베이징
17세기 말 베이징 자금성에서는 오늘 우리가 상상해도 낯설고도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황제, 유럽에서 온 예수회 선교사, 그리고 베이징과 유럽을 오가며 편지로 철학적 대화를 나누던 한 사상가가 하나의 그림—팔괘(八卦)—을 사이에 두고 세계의 질서를 논하고 있었다.
그들은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예수회 선교사 조아킴 부베(Joachim Bouvet), 그리고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였다. 서로 다른 문명과 종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 세 인물은 왜 주역을 매개로 연결되었을까?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300년 전에 이미 ‘0과 1’의 세계를 직감할 수 있었을까?
■정복을 넘어 ‘운영의 제국’을 설계하려던 황제
부베를 맞이했을 때 강희제는 이미 제국의 팽창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운영의 국면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서 있었다.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대만을 편입했으며, 몽골과 티베트를 질서 안에 넣은 뒤 남은 과제는 분명했다.
“이 광대한 제국은 어떤 사유의 체계로 다스려져야 하는가?”
유교 경학은 제국의 기본 윤리와 질서를 제공했지만, 복잡한 영토 전체의 시간·공간·정치·사회 구조를 하나의 논리로 엮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은 정밀한 관측과 계산을 제공했으나, 국가 운영의 ‘최상위 원리’로 삼기에는 부족했다. 이때 강희제가 다시 주역으로 눈을 돌린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에게 주역은 점술서가 아니라, 천·지·인과 변화·순환·질서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어내는 ‘제국의 운영체제(Operating System of Empire)’였다. 강희제가 방대한 문헌을 분류하고 집성한 작업은 오늘날 국가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그는 그 위에 역학이라는 철학적 OS를 올리고자 했다.
■베이징에 도착한 예수회 학자, 그리고 예상 밖의 해석
이 무렵 루이 14세가 파견한 예수회 학자 집단의 일원인 부베가 베이징에 도착했다. 수학·기하학·자연철학에 능통했던 그는 곧 황제의 개인 교사가 되었고, 세계를 숫자와 도형으로 설명하는 서양식 사고를 전했다. 강희제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주역을 건네며 물었다.
“서양 학자의 눈으로 본 역경은 어떤 책인가?”
그러나 부베의 해석은 강희제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팔괘와 64괘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며, 그 안에서 신의 창조 언어—이진적 패턴—을 보았다. 그리고 이를 1711년 《易學總旨》, 1712년 라틴어 저작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 팔괘·64괘는 신의 창조에 사용된 수학적 언어, 즉 0과 1이다.
② 복희는 ‘홍수 이전 계시’를 보존한 인물이다.
③ 주역은 창세기의 원형, 원시 성서(Proto-Genesis)다.
④ 동서 경전은 표현만 다를 뿐 동일한 신적 질서를 가리킨다.
물론 이는 부베의 신학적 해석일 뿐 역사적 사실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주역을 코드와 패턴의 언어로 읽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의 디지털 세계가 기반하는 사고방식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주역의 다층적 구조를 기독교적 구원서사로 환원시키는 단선적 해석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부베의 해석은 곧 ‘피규리스트(Figurists)’라는 소집단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주역·서경·고대 문자와 신화를 하나의 암호문으로 보고, 그 열쇠는 성서라고 믿었다. 예수회 내부에서도 이 시도는 매혹과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켰고, 도미니코회·프란치스코회·교황청은 이를 위험한 신학적 실험으로 규정했다.
결국 피규리스트는 주류가 되지 못했으나, 경전을 코드로 읽으려는 시도만큼은 디지털 인문학의 먼 전조로 평가할 수 있다.
■로마와 베이징—두 운영체제의 정면 충돌
그러나 이러한 지적 실험 뒤에는 조상 제사와 공자 숭배를 둘러싼 중국 의례 논쟁이라는 더 큰 충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회는 유교 의례를 도덕·사회적 예절로 보며 허용을 주장한 반면, 도미니코회·프란치스코회·교황청은 이를 우상 숭배로 규정했다.
강희제에게 이 문제는 단순한 신학 논쟁이 아니었다. 천자·조상·성인에 대한 의례는 중국 문명을 떠받치는 핵심 질서였으며, 이는 역경이 전제하는 순환·조화·질서의 세계관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강희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로마는 중국 사정을 모른다.”
그리고 선교사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이 사건은 곧 역경(易經) vs 성경(聖經), 다층 의례OS vs 단일 교리OS, 즉 베이징과 로마 두 문명의 운영체제가 정면으로 충돌한 장면이었다.
■결론—오늘 다시 떠오르는 오래된 질문
17세기 말 베이징에서 벌어진 사건은 단순한 종교 논쟁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설계하려는 동서 문명의 운영체제가 글로벌 무대에서 처음 충돌한 순간이었다. 한쪽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단일·보편 질서를, 다른 한쪽은 역경을 바탕으로 한 순환·다층 질서를 제시했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세계를 해석할 권리를 갖는가? 그리고 어떤 문명의 OS가 ‘보편’을 규정할 것인가?
17세기 로마와 베이징의 갈등은 오늘날 21세기 미국과 중국의 충돌 속에서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세계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가 인류의 미래 질서에 더 바람직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문명의 운영체제가 인류의 미래를 이끌 ‘보편적 설계 원리’가 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