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는 삼성중공업이 하도급법을 위반한 혐의와 관련해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조선업체인 삼성중공업이 사내협력사(수급사업자)에게 선박 제조를 위한 임가공 작업을 위탁하면서, 작업 시작 이후에야 계약서를 발급한 행위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나온 조치다.
동의의결 제도는 법 위반 혐의를 받는 사업자가 스스로 피해 구제나 거래 질서 개선 방안을 마련해 제시하면,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의견을 듣고 시정방안이 타당하다고 인정할 경우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히 종결하는 절차다. 이번 결정은 작년 6월 엔터테인먼트 5개 사에 이어 두 번째로 동의의결 절차가 개시된 사례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1년 단위로 수급사업자와 하도급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작업 물량이 정해지면 개별 계약을 통해 하도급대금을 협의해 왔다. 문제가 된 부분은 이 개별 계약 과정에서 계약서가 작업 시작 이후에 발급된 서면 지연 발급 행위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서면 지연 발급을 제외한 다른 신고 사항(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신고를 이유로 한 계약 해지, 추가 공사 대금 미지급 등)은 심사 종료 및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삼성중공업은 법적 다툼보다는 수급사업자와의 거래 관계 개선과 상생 협력을 위해 지난해 12월 22일 공정위에 동의의결 신청을 했다. 회사가 제시한 시정방안은 크게 거래 질서 개선 방안과 상생 방안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계약관리 시스템을 개선해 서면 발급 절차를 전산화하고, 표준하도급 계약서를 전면 사용하며, 임직원과 협력사 교육을 강화하고, 원·하청 간 상설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상생 방안으로는 연간 113억 원 규모의 지원책이 포함됐다. 동반지원금 인상(연 30억 5000만 원), 명절 귀향비와 휴가비 신설(연 52억 5000만 원), 숙련기술자 희망공제사업(근로자가 160만 원을 납입하면 8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20억 원 규모), 공동근로복지기금 확대(자녀 학자금 등 기존 20억 원에서 10억 원 증액) 등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삼성중공업이 제안한 시정방안이 동의의결 절차 개시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고 절차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잠정 동의의결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수급사업자와의 적절한 상생 방안을 더 보완하도록 권고했다. 앞으로 공정위는 삼성중공업과 협의해 시정방안을 구체화한 잠정 동의의결안을 마련하고,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및 관계 기관 협의를 거친 뒤 최종안을 위원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동의의결 제도는 공정위가 사업자의 자발적 시정을 유도하고 신속한 피해 구제를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제24조의9에 따르면, 동의의결이 성립되더라도 해당 행위가 법을 위반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며, 누구도 동의의결 사실만으로 법 위반을 주장할 수 없다. 이번 사례가 향후 조선업계와 다른 업종에서의 하도급 거래 관행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