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일 계기 독립유공자 13명 포상

정부가 제100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일을 맞아 독립유공자 13명을 특별 포상한다. 국가보훈부는 10일 "1926년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6·10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이병립 선생(건국훈장 애국장) 등 13명을 포상한다"고 밝혔다.

6·10만세운동은 1926년 순종 황제 인산일에 학생과 종교계, 사회주의 활동 참여자들이 함께 계획하고 실행한 독립만세운동이다. 1919년 3·1운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과 함께 우리 민족의 3대 만세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100주년을 맞아 이 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만세 운동 참여자들에 대한 포상을 진행했다.

포상 대상자는 건국훈장 애국장 2명, 건국포장 2명, 대통령표창 9명 등 총 13명이다. 생존 애국지사는 없다. 건국훈장과 건국포장은 제100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일 중앙기념식 등에서 후손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이병립 선생은 강원도 통천 출신으로 연희전문학교 엘리트 청년이었다. 재학 중 신흥청년동맹과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항일 의지를 키웠고, 순종 황제 인산일에 맞춰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인산일 당일 연희전문 학생 및 연구회원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 문구가 적힌 인쇄물을 제작·살포하며 일제에 항거했다. 당시 신문에 따르면 6월 10일 오전 9시경 연희전문학교 학생 200여 명이 인쇄물을 배포하고 만세를 고창했으며, 여러 학생이 호응했다. 이병립 선생은 이 만세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체포돼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나, 형기 직후 조선공산당 관계 혐의로 재차 체포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추가로 받았다.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의 활동은 민족의식을 지키기 위한 청년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건국포장을 받은 유경상 선생도 강원도 통천 출신이다. 1926년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6·10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됐으며, 학교로부터 약 1개월간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한 연설 활동을 펼쳤다. 하와이에서는 1943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국방위원,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사위원회 총서기 등으로 활동했다. 국내와 미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이어간 점이 특별한 사례로 평가된다.

대통령표창을 받은 김낙환 선생은 경기도 김포 출신으로 당시 시대일보 신문배달부였다. 만세운동 직전 이병립 선생으로부터 인쇄기 사용을 요청받아 인쇄물 제작을 도왔고, 신문배달부로서 만세시위 당일 인쇄물 배포 역할도 맡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했으며, 1927~28년 경에는 경기도에서 신사회 건설을 위한 지하조직 활동을 이어간 것으로 확인된다. 엘리트 학생층과 신문배달부라는 차이를 넘어 조선 독립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하나된 청년들의 민족 저항 사례로 꼽힌다.

이번 포상으로 정부 수립 이후 누적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총 1만8,789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건국훈장 1만1,943명, 건국포장 1,572명, 대통령표창 5,274명이다. 포상자 출신 지역은 서울 4명, 강원 3명(통천 2명, 고성 1명), 경기 3명(고양·김포·수원 각 1명), 충북 1명(충주), 평북 2명(정주·선천 각 1명) 등이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100주년을 맞아 조국의 자주독립이라는 위대한 역사를 쓰는 데 공헌하신 분들께 독립유공자 포상을 하게 되어 매우 뜻깊다"며 "정부는 나라를 빼앗긴 혹독한 시련과 수많은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을 쟁취하신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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