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눈 양보 없는 공방에 흐려진 실손보험의 본질
# [기자의 눈] 양보 없는 공방에 흐려진 실손보험의 본질
“실손의료보험은 인간의 선의(善意)에 기대어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입 당시에는 실손보험으로 인해 다양한 비급여 수술이 만들어지고 고액 치료가 성행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 같아요.”
지난 18일 금융감독원이 주최한 ‘제2차 금융소비자보호 토론회’의 한 참석자는 실손보험의 구조적 한계를 이같이 요약했다. 1990년대 후반 도입된 실손보험은 당시와 같은 의료 환경이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국민이 납입한 소액의 보험료를 추후 큰 규모의 의료비가 필요할 때 지원받을 수 있도록 구축된 민간 의료보험이다. 통상 보험의 기본 원리인 ‘누군가의 위험을 다수가 나눠 부담하는 제도’로서 운용돼 왔지만, 지금의 실손보험은 ‘공동 분담’이 아닌 ‘개별 청구’ 중심의 시장형 상품으로 변질됐다.
대다수 선량한 가입자와 일부 ‘악덕 청구자’가 공존하는 구조에서, 보험료 인상은 선량한 다수에게 전가되고 있다. 가입자 상위 9%가 전체 보험금의 대부분을 청구하고, 나머지 65%는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금감원 조사 결과를 담기에 ‘불공정한 구조’라는 표현은 너무 단순한 함축이다.
보험은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사고나 위험을 보장한다는 ‘우연성(偶然性)’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실손보험으로 보상받는 치료는 우연성에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만성화된 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도수 치료나 미용을 위한 피부 시술 등이 그렇다. 보장 범위가 넓은 1~2세대 실손보험을 중심으로 이 불일치의 틈이 벌어져 예상 가능한 치료 행위가 반복 청구 대상으로 변하고, 보험금 수취를 염두에 둔 의료 쇼핑이 만연해졌다. 선의가 도덕적 해이로 변질된 것이다.
기자의 경험도 다르지 않다. 손목 근육 질환이 만성화된 기자는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면 재활의학과나 정형외과에 방문해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곤 한다. A 병원은 진료 접수 단계부터 실손 가입 여부를 확인하고, 치료가 끝나면 다음 예약일을 잡으며 적극적인 고객 유치에 나섰다. 반면 B 병원은 주사나 약물치료를 권하고 ‘심할 때만 치료를 받으라’고 조언했다. 병원마다의 이런 태도 차이도 비급여 누수와 비용 증가의 한 축을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금감원은 ‘소비자보호’라는 명목 아래 지난 18일 토론회에서 실손보험의 구조적 개편 의지를 공론화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소비자 입장을 대변한 참석자는 실손보험의 불완전판매(실손 보장이 된다고 해 가입했지만 보험금이 부지급된 사례), 상품 개편에 따른 보장 축소 등을 지적하며 소비자가 겪는 분쟁·피해에 대한 감독당국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반면 보험업계와 연구진은 비급여 진료 남용과 공급자 행태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며, 공·사보험 연계와 심사 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논의 방향은 달랐지만 “현행 구조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제는 모두가 진단만 할 뿐 누구도 먼저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자 간 대립의 구도는 이미 고착화됐다. 의료계는 “비급여는 환자의 선택권”이라 주장하고 소비자는 “보험료만 오르고 혜택은 줄었다”고 불만을 표하며, 보험사는 “청구 남용으로 손해율이 급등했다”고 항변한다.
세 주체가 각자의 논리로 정당성을 강조할수록 실손보험의 신뢰 기반은 더 약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의 말이 옳은가’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속 가능한 구조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합의다. 의료계는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 권유를 자제해야 하고, 소비자 역시 실손보험을 ‘수익 수단’이 아닌 ‘위험 분산 장치’로 인식해야 한다. 보험업계는 지급심사 과정에서 기계적 거절보다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고, 의료 전문가·법조계와의 협의 체계를 상시화해야 한다.
‘선의’ 위에 세워진 제도는 상호 신뢰와 절제된 이익의 균형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지 않는 한 실손보험은 매년 반복되는 보험료 인상과 손해율 악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