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과거사 진실규명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정부 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하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신청인의 주장을 충분히 살피지 않고 각하(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위원장 조소영)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2기 과거사정리위)가 ‘고창월림 희생사건’ 생환자 관련 진실규명 건에 대해 내린 각하결정을 취소했다고 4일 밝혔다.
‘고창월림 희생사건’은 2007년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1기 과거사정리위)가 전북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 일대에서 발생한 민간인 피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한 사건이다. 1기 위원회는 당시 이 사건이 부당한 공권력 남용으로 발생했으며 성추행 사실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추정된다는 내용을 보고서에 담았다.
청구인들은 2021년 5월 2기 과거사정리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이들은 1기 위원회가 고창월림 희생사건에서 사망하지 않고 살아 돌아온 생환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하지 않았다며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기 과거사정리위는 2024년 12월 이 신청을 각하했다. 각하 사유로는 생환자들이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 제2조제1항제3호(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 사망·상해·실종 사건)에 따른 진실규명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청구인들은 생환자들이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당한 피해자라며, 같은 법 제2조제1항제4호(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사망·상해·실종 사건 등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2기 과거사정리위가 이의신청을 기각하자 2025년 7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기 과거사정리위의 각하결정이 위법·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1기 과거사정리위의 고창월림 희생사건 보고서는 이 사건이 부당한 공권력 남용으로 발생했고 성추행 사실이 추정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둘째, 청구인들은 생환자가 과거사정리법 제2조제1항제4호의 진실규명 범위에 포함된다고 주장했으나, 2기 위원회는 같은 법 제2조제1항제3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각하하면서 청구인들의 주장 자체를 판단하지 않았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소영 중앙행정심판위원장은 “과거사정리위가 진실규명 신청을 각하할 때는 신청인이 주장한 바를 검토해 신청인이 각하결정을 납득할 수 있도록 그 사유를 명확히 기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법령과 사실관계를 면밀히 검토해 국민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진실규명 절차에서 신청인의 주장을 형식적으로만 검토하고 각하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사례로 평가된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앞으로도 유사 사건에서 신청인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심리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