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6.10만세운동 100년 통합 자문회의 개최

국가보훈부는 6·10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1일 오전 서울 중구에서 '6·10만세운동 100년 통합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는 일제강점기 3대 만세운동으로 꼽히는 6·10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연대와 통합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마련됐다.

6·10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순종 황제의 인산일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다. 당시 조선공산당과 천도교 세력이 협력해 운동을 준비했으며,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함께 뜻을 모아 신간회 창설에 영향을 주었다. 이 운동은 3·1운동(1919년)과 1929년 학생독립만세운동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자문회의에는 정계, 독립유공자 후손, 종교계, 학계, 언론·출판계 등 각 분야 국가원로 1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로는 임채정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종찬 광복회장, 김을동 전 국회의원, 김영주 한국종교지도자 원로회의 기독교 대표, 박남수 한국종교지도자 원로회의 천도교 대표, 김희중 전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길여 가천대 총장,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 소설가 이문열 등이 이름을 올렸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6·10만세운동은 차이를 넘어 국민 모두가 함께 독립을 외쳤던 역사"라며 "100주년을 맞아 운영되는 이번 자문회의가 국민통합과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지혜를 모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6·10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순종 황제의 인산일을 맞아 제2의 3·1운동을 일으켜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보이기 위해 기획됐다. 준비 과정에서 조선공산당 권오설을 중심으로 '6·10투쟁특별위원회'가 설치됐고, 천도교와 임시정부 일부 세력, 국내 학생운동조직이 참여했다. 그러나 일제의 사전 체포로 운동 지도부가 검거되면서 서울 지역 학생 중심의 만세시위와 지역별 산발적 시위로 이어졌다.

이후 전국 각지 학생들은 동맹휴학으로 일제에 항거했으며, 이 운동은 신간회 설립의 배경이 되고 학생들이 독립운동의 주체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보훈부는 이번 자문회의를 통해 보훈을 매개로 한 국민통합과 사회적 연대 방안을 폭넓게 논의할 계획이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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