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이 중동 지역의 불안정한 정세에 대응해 원유와 석유화학 원료의 수입선을 다변화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 정책을 26일부터 시행한다. 이번 조치는 미국산 원유,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 말레이시아산 원유의 수입을 확대해 국내 에너지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우선 관세청은 자유무역협정(FTA) 특혜관세를 받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했던 '직접운송 원칙'을 완화하는 특례를 신설했다. 기존에는 FTA 협정국에서 한국까지 원유가 제3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들어와야만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산 원유는 운송 과정에서 멕시코 등 다른 국가를 경유하는 경우가 많아 정유사들이 FTA 특혜를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번 특례가 시행되면 중간 경유지에서 일부 원유를 싣거나 내리더라도 미국산 원유에 대해 FTA 특혜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특히 기존에는 경유국 세관이 발급한 복잡한 서류를 제출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선박위치정보(AIS)나 원유 계측 데이터 등 정유사가 이미 보유한 자료만으로도 직접운송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 관세청은 이번 조치로 연간 최대 3,300만 배럴의 캐나다산 원유 도입이 가능해진 데 이어, 미국산 원유 수입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관세청은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의 품목분류를 원유(HS 제2709호)가 아닌 석유 제품(HS 제2710호)으로 신속히 결정했다. 그동안 나프타 대체품은 세계관세기구(WCO)의 기준이 불명확해 원유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경우 3%의 관세와 비축 의무가 발생해 석유화학 업계가 수입을 꺼려 왔다.
이번 결정으로 나프타 대체품은 관세 없이 수입될 뿐만 아니라 비축 의무도 면제돼 수입 즉시 공정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은 나프타 함량이 80~90%에 달해 품질이 매우 우수하며, 연간 약 250만 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 업계 전체 나프타 수입량의 약 16%에 해당하는 규모로, 종량제 쓰레기봉투, 주사기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석유화학 제품의 안정적인 생산에 기여할 전망이다.
셋째, 관세청은 말레이시아산 원유 수입업체들이 오랫동안 겪어온 원산지증명서(CO) 발급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당국과 협의 중이다. 말레이시아산 원유의 원산지증명서 발급에는 평균 6개월 이상이 소요돼, 업체들은 원유를 수입할 때 일단 관세를 먼저 납부하고 나중에 증명서를 받아 환급받는 불편을 겪어 왔다. 이 과정에서 장기간 자금이 묶여 업체들의 부담이 컸던 만큼, 관세청은 발급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종욱 관세청장은 지난 3월 초 '중동상황 비상대응 전담조직(T/F)'을 구성해 납기 연장·분할 납부·담보 생략, 운임 상승분 과세가격 제외, 경제안보품목 입항 전 수입신고 허용 등 긴급 지원책을 시행한 바 있다. 그는 "앞으로도 경제안보품목 공급망 전반의 규제혁신을 지속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국내 에너지 수급 안정에 행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