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가뭄과 고온 같은 환경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작물 생산성이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농촌진흥청이 식물호르몬 없이도 작물이 스트레스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농촌진흥청(청장 이승돈)은 합성생물학 기술을 적용해 식물의 대표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인 앱시스산(ABA)이 없어도 스트레스 대응 신호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수용체를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체를 구성 요소 단위로 이해하고 설계해 새로운 기능을 가진 생물 시스템을 만드는 학문이다. 앱시스산은 식물이 가뭄, 염분 스트레스 등을 겪을 때 생성하는 호르몬으로, 수용체(PYL)와 결합해 신호전달을 시작한다. 이 신호는 단백질 탈인산화 효소(PP2C)의 억제 기능을 해제해 식물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연구진은 벼의 앱시스산 수용체(OsPYL5)를 대상으로 무작위 돌연변이를 유도한 후 효모 이중하이브리드 분석법으로 약 2억 5천만 개의 돌연변이 집단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앱시스산 없이도 단백질 탈인산화 효소와 결합해 스트레스 대응 신호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수용체 16개를 선별했다.
특히 연구진은 이 수용체 단백질 내 특정 아미노산 두 개(L93과 N102)가 앱시스산 비의존적 신호 활성화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두 아미노산을 동시에 변이시킨 이중돌연변이체(OsPYL5L93WN102Y)는 신호 활성도가 크게 증가했으며, 앱시스산이 없거나 매우 적은 농도에서도 선제적으로 스트레스 대응 반응을 나타냈다.
새로 설계된 수용체를 과발현한 형질전환 벼를 분석한 결과, 기존 벼 품종보다 가뭄이나 염 스트레스 상황에서 생존율과 생체량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특히 가뭄 처리 후 회복 단계에서 높은 생존율을 보여 뚜렷한 가뭄 저항성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다만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이 지속되면서 생장 감소와 같은 생육 저해 현상도 함께 관찰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Plant Cell & Environment'(IF 6.2) 온라인판에 게재됐으며,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선정하는 '한국을 빛낸 사람들(한빛사)' 논문으로 선정돼 연구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한 특허출원(ABA 수용체 돌연변이 및 이의 용도)도 완료해 산업적 활용 기반을 확보했다.
농촌진흥청 식물소재바이오공학과 이시철 과장은 "이번 연구는 자연계의 신호전달 체계를 밝히는 수준을 넘어 핵심 단백질을 설계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 합성생물학적 성과"라며 "식물호르몬 의존적 신호체계를 재설계함으로써 작물의 환경 적응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이번 기술은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생산성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적인 도구로 평가되며, 향후 다양한 작물에 적용돼 환경 스트레스 내성을 높이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