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5월 21일 오후 2시 권창준 차관 주재로 플라스틱·섬유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8차 비상고용노동상황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는 중동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플라스틱과 섬유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해 고용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마련됐다.
플라스틱·섬유 업계 모두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비용 부담이 심각한 수준이다. 플라스틱 산업의 경우 합성수지 원료값이 큰 폭으로 올랐으며, 전체 사업장의 약 80%가 중소 영세업체(2만1천여 개)여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중동전쟁 전후로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원료 가격은 2월 t당 130만~140만원에서 5월 260만~28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고,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도 167만~177만원에서 280만~300만원으로 급등했다. 이에 따라 올해 4월 기준 플라스틱 제조업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는 17만5천명으로 지난해 1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1%씩 계속 줄어들고 있다.
섬유 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폴리에스터 섬유의 주요 원료인 PTA와 MEG 가격이 2월보다 각각 30% 이상 올랐다. 여기에 올해 1~4월 중동 지역 수출액이 35.6% 감소했고, 중동으로 가는 해상 운임이 단기간에 3배로 뛰면서 납기 지연에 따른 주문 취소와 반송 사례도 늘고 있다. 그 결과 수요처 이탈과 거래 신뢰도 하락까지 겪고 있다. 섬유 제조업의 고용보험 피보험자는 8만8천명으로 2021년 9월부터 줄곧 감소세이며, 의복 제조업도 4만6천명으로 2016년 10월부터 장기 감소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간담회에서 업계 대표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먼저 고용유지지원금의 요건 완화와 한도 확대, 고용보험료 납부 유예 등 단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특별고용지원업종이나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 고용유지 패키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업계 특성상 인력 공백이 발생하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청년 구직자 유입 등 인력난 해소 방안도 함께 요청했다.
권창준 차관은 현장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며 필요한 지원이 제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세 가지 방향으로 대책을 추진한다.
첫째, 고용유지지원금을 다각도로 개편해 기업의 고용유지 노력을 신속하게 지원한다. 지난 5월 6일부터 고무·플라스틱 제조업은 매출액 감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지원 대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5월 12일부터는 유급 고용유지 조치 시 지원 요건을 개편해 사업장 전체가 아니라 일부 직원이나 부서만 대상으로 하더라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영세 사업장의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개별 사업장이 작성한 신청 서류를 협동조합 등 사업주 단체가 모아 한꺼번에 제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둘째, 고용위기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여부를 신속하게 검토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지난 5월 4일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요건을 개선해 위기 상황을 더 빨리 포착할 수 있도록 했다. 주요 개선 내용은 정량 요건 산정 기간을 기존 12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하고, 구직급여 신청자 수에 회사 사정으로 그만둔 일용직도 포함한 것이다. 플라스틱·섬유 업계가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을 신청하면 관련 절차에 따라 요건 충족 여부를 조속히 검토할 방침이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면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한도가 올라가고, 사업주 훈련 지원 한도가 확대되며, 고용·산재보험료 납부도 6개월간 유예받을 수 있다.
셋째, 청년 구직자 등 새로운 인력 유입을 지원한다.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을 통해 비수도권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는 기업과 청년 모두 2년간 최대 720만원씩 인센티브를 준다. 또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해 오래 다닐 수 있도록 유연근무 장려금, 워라밸일자리 장려금 등 다양한 재정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아울러 플라스틱·섬유 산업이 몰려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일자리 수요데이’ 운영 등 채용 지원 서비스를 집중 제공할 계획이다. 일자리 수요데이는 구인 기업과 구직자를 연결하는 날로, 채용 면접과 직무 특강, 취업 컨설팅 등 프로그램을 수요일에 집중 운영하는 방식이다.
권창준 차관은 “당장 체감되는 고용위기가 없더라도 작은 징후가 큰 고용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위기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고용 불안이 확산되기 전에 면밀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길어지고 고유가가 일상화되면서 사회 전체가 위기에 둔감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정부와 업계가 경각심을 잃지 않고 함께 힘을 모은다면 이번 위기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