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이 사상 최대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20일 발표한 '2025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 4000억 원으로 전년(431조 7000억 원)보다 69조 7000억 원(16.1%) 증가했습니다. 이는 400조 원을 넘어선 지 불과 1년 만에 500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퇴직연금 제도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연간 수익률도 6.47%로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특히 실적배당형 상품의 수익률이 16.80%를 기록하며 원리금보장형(3.09%)을 크게 앞질렀습니다. IRP(개인형 퇴직연금)는 9.44%, DC(확정기여형)는 8.47%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냈고, DB(확정급여형)는 3.53%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역대 최고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운 노후를 준비하기에는 아쉬운 수준입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75.6% 급등했고, 국민연금은 19.9%, 미국 연기금(CalPERS)은 12.2%, 일본 GPIF는 12.3%의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이들에 크게 못 미친 이유는 여전히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적립금이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적립금의 운용 방법을 살펴보면, 전체의 75.4%인 378조 1000억 원이 예·적금이나 보험 등 원리금보장형에 묶여 있습니다. 반면 실적배당형은 123조 3000억 원(24.6%)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DC와 IRP에서는 실적배당형 비중이 전년보다 10%포인트가량 늘어나는 등 자산 배분 투자가 활성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ETF(상장지수펀드) 투자가 급증했습니다.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ETF 투자 금액은 48조 7000억 원으로 3년 연속 100% 이상 증가율을 기록하며 실적배당형 적립금의 40%를 차지했습니다. TDF(생애주기펀드)도 20조 1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50% 증가했으며, 연간 수익률 13.7%를 기록해 주목받았습니다.
제도 유형별로는 DB가 228조 9000억 원(45.7%)으로 가장 많지만 비중은 줄고 있고, DC는 141조 6000억 원(28.2%), IRP는 130조 9000억 원(26.1%)으로 IRP가 매년 30%대 증가율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권역별로는 은행이 260조 5000억 원(52.0%)으로 가장 큰 시장을 차지했고, 증권사가 131조 5000억 원(26.2%)으로 점유율을 지속 확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입자 간 수익률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입니다. 상위 10% 가입자는 실적배당형에 적립금의 84%를 투자해 19.5%의 수익률을 올렸고, 적립금 증가액의 67%가 운용 수익에서 나왔습니다. 반면 하위 10%는 적립금의 74%를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해 수익률이 0.5%에 불과했으며, 적립금 증가의 대부분이 납입 원금에 의존했습니다.
전체 가입자의 절반가량은 여전히 2%대의 낮은 수익률에 머물러 물가 상승분(2.1%)을 간신히 방어하는 수준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 매년 1000만 원씩 20년간 납입했을 때 적극적으로 자산 배분한 포트폴리오는 약 4억 3000만 원을 수령하는 반면, 원리금보장형에만 의존하면 약 2억 7000만 원에 그칩니다. 같은 돈을 넣어도 운용 방법에 따라 수령액이 1.6배 차이 나는 셈입니다.
이런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통합연금포털의 '내연금조회' 코너를 통해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한눈에 확인하고 예상 수령액을 미리 계산할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 비교공시'에서는 상품별 과거 수익률과 수수료, 위험도를 비교할 수 있어 현명한 선택을 돕습니다.
직접 운용이 부담스러운 가입자를 위해 TDF와 디폴트옵션 같은 전용 상품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TDF는 은퇴 시점에 따라 자동으로 자산 배분을 조정해주며, 지난해 13.7%의 우수한 성과를 냈습니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일정 기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전에 정한 투자 성향에 따라 자동으로 운용되는 제도로, 중립투자형은 10.8%의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안정형은 예금 위주로 구성되어 기대 수익률(2.6%)이 낮을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금감원은 올해 하반기 '퇴직연금 가이드북'을 발간해 초보 투자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실제 운용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할 계획입니다. 또한 오는 6월에는 연금저축 운용 현황을 별도로 안내하고, 디폴트옵션 상품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 수익률 제고를 유도할 방침입니다. 앞으로는 매분기 퇴직연금 및 연금저축 운용 현황을 정기적으로 공개해 가입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