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공장 막은 ‘물 부족’… 산업계 덮친 워터 리스크

반도체 공장 막은 ‘물 부족’… 산업계 덮친 워터 리스크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과정에서 산업용수 확보 문제가 불거지면서 물 리스크가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뿐 아니라 배터리·철강·화학·제약 등 물 사용량이 많은 산업 전반이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글로벌 투자자와 고객사의 물 정보공개 요구도 강화되는 분위기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13일 CDP 데이터를 분석한 이슈브리프 ‘한국 기업의 물 리스크·공시 현황과 과제’를 발간하고 국내 기업들의 물 리스크 대응 체계 구축 필요성을 제기했다.
■ 산업 경쟁력 흔드는 ‘물 확보’ 문제
용인 반도체 일반산단은 남한강 여주보에서 산업단지까지 용수관로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지자체 인허가와 지역 상생 갈등이 발생하며 착공이 지연됐다. 단순 환경 문제가 아닌 물 확보 여부가 산업 입지와 생산 일정, 공급망 경쟁력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사례라는 분석이다.
KoSIF는 “물 리스크는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가뭄·홍수·물 스트레스 심화가 물 의존도가 높은 산업 전반의 생산 안정성과 비용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기업 상당수는 이미 물 리스크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CDP 수자원(Water Security) 데이터 기준 국내 응답기업의 77%는 중대한 물 리스크가 있다고 답했으며, 주요 리스크 유형은 홍수 51건, 물 스트레스 48건, 가뭄 39건 순이었다.
■ “영향 작다”지만… 실제 피해 과소평가 우려
다만 재무적 영향에 대한 정량화 수준은 아직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2025년 CDP 한국 보고서 기준 물 리스크의 건당 평균 재무영향은 약 3300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기후변화 리스크의 건당 평균 재무영향은 약 114억원 수준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물 리스크의 실제 영향이 과소평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구조적으로 물 스트레스가 높은 국가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세계자원연구소(WRI) 기준 여름철 수요가 집중되는 6월에는 국내 대부분 지역이 ‘High’ 등급 이상의 물 스트레스 지역으로 분류된다. 물 스트레스는 특정 지역의 재생가능 수자원 대비 실제 취수량 비율을 의미하며, 40% 이상이면 높은 스트레스 지역으로 평가된다.
업종별로는 제약·건강 산업의 물 스트레스 지역 취수 비율이 88.5%로 가장 높았고, 이어 산업재 61.2%, IT 60.4%, 선택소비재 50.8% 순이었다. 반도체·배터리·철강 산업 역시 CDP 워터 임팩트 인덱스 기준 물 영향도가 매우 높거나 취약한 산업군으로 평가됐다.
■ 글로벌 공급망은 이미 ‘물 데이터’ 요구
글로벌 고객사와 금융기관의 데이터 요구도 강화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은 협력사에 물 사용량과 폐수관리, 물 재이용 현황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중앙은행과 영란은행 등 주요 중앙은행도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에 홍수·가뭄 등 물 리스크를 포함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공시 참여는 최근 감소세를 보였다. CDP 수자원 응답기업 수는 2023년 135개에서 2024년 116개, 2025년 113개로 줄었다. KoSIF는 한미반도체, LG에너지솔루션, 현대모비스, HL만도, 포스코퓨처엠, 현대제철, OCI홀딩스 등을 주요 미응답 기업으로 꼽았다.
남나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선임연구원은 “물 리스크는 이제 기업이 자발적으로 관리할지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고객사와 투자자, 금융기관이 요구하는 핵심 경영 정보가 되고 있다”며 “기업들은 물 데이터를 글로벌 기준에 맞춰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 공시 데이터가 지속가능연계대출(SLL) 등 금융상품 KPI로 활용되는 만큼 선제적인 물 공시는 비용이 아니라 자금조달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