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의 안정은 종종 기반 시설의 무결성 위에 성립하지만, 그 기반의 붕괴는 예고 없이 삶을 마비시킨다. 충남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지하 배전반 화재로 인한 일주일간의 정전 사태는 단순한 전력 공급 중단을 넘어, 주민들의 기본적인 생활권마저 위협하는 사건으로 확대됐다. 멈춘 엘리베이터, 고장 난 냉장고, 의료기기 사용자의 생명 위협까지, 물리적 피해를 초월한 2차·3차 손실이 집중적으로 노출됐다.
현재 국내 보험 체계는 이 같은 복합적 일상 중단에 대한 보상 기준이 명확히 마련돼 있지 않다. 기존 아파트 단체보험은 공용 시설의 물적 피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개인화재보험 역시 직접적인 재산손실까지만 커버한다. 사고 원인에 대한 과실 소명이 어려운 경우, 주민들이 겪는 생계 중단과 정신적 피해는 보험적 보호망에서 사실상 배제된다.
이러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안으로 ‘파라메트릭 보험’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손해액 산정 대신 정전 지속 시간, 외부 기온 등 객관적 물리 변수가 사전 설정된 기준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보험금이 지급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정전 24시간 초과 시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민안전보험을 통해 모든 세대에 긴급지원금이 송금되는 식이다. 이 방식은 과실 논쟁을 배제하고 피해 회복의 속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
특히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파라메트릭 보험의 확장 가능성은 높다. 폭염이나 한파 시 외부 기온 기준을 트리거로 냉·난방비를 자동 지원하는 시스템은 입증 절차 없이도 즉각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보험의 역할이 사후 정산을 넘어서, 위기 상황에서 시민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지키는 선제적 수단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데이터 인프라와 연계된 지수 기반 보험의 도입을 점차 검토하고 있으나, 법적 근거와 재정 조달 구조의 명확화가 선행돼야 한다. 도시의 복잡성이 증가할수록 전통적 보험의 한계도 부각되고 있다. 보험이 단순한 리스크 전가 수단을 넘어, 사회적 회복력을 높이는 공공재로 기능할 수 있을지,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