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 132년 전 민중의 열망 담긴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되살려

국가기록원이 132년 전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열망이 담긴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복원·복제해 소장처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전달했다. 5월 7일 열린 전달식과 함께 양 기관은 기록물의 체계적인 보존과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이번 협력은 동학농민혁명의 기록을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185건의 관련 기록물 가운데 기념재단이 66건을, 국가기록원이 전봉준 판결문 등 5건을 각각 보관하고 있다. 양 기관은 협약을 통해 기록물의 복원·복제와 관리, 전시·교육·콘텐츠 개발, 지속 가능한 교류 체계를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복원 작업의 중심에는 조선 정부가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설치한 김산 소모영(현 경북 김천)의 기록인 '소모사실(召募事實)'이 있다. 이 기록물은 소모사였던 조시영(1843~1912년)이 1894년 11월 21일부터 1895년 1월까지 약 2개월간 각급 기관과 주고받은 공문을 날짜별로 정리한 일지 성격의 필사본이다. 조선 정부의 농민군 진압 방향과 규칙, 농민군 지도자 재산 몰수, 오가작통(다섯 가구를 하나로 묶어 통제) 실시 등 향촌 사회의 생생한 실상이 담겨 있다.

총 68매로 구성된 '소모사실'은 크기가 가로 27cm, 세로 30cm이며, 표지와 내지 모두에 지름 10cm 크기의 세 마리 말이 새겨진 붉은색 삼마패(三馬牌)가 찍혀 있다. 복원 전에는 표면 가장자리의 말림과 파손, 곰팡이와 수침 얼룩 등 훼손이 심했으나, 국가기록원은 2개월에 걸쳐 오염 물질을 제거하고 파손 부위를 한지로 보강했다. 복원 후에는 원본과 동일한 재질의 끈을 염색해 전통 장정법(오침안정법)으로 제본하고 보존 상자에 보관해 수명을 연장했다.

기록물의 훼손을 막으면서도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사발통문', '유광화 편지', '한달문 편지' 등 대표 기록물은 원본과 똑같은 복제본으로 제작됐다. 1893년 11월 전봉준 등 20명이 주도자를 알 수 없도록 사발 둘레에 이름을 쓴 '사발통문'은 고부군수 조병갑 등 탐관오리를 벌하고 전주영을 함락한 후 서울로 진격한다는 거사 계획을 담고 있다. '유광화 편지'에는 유교적 소양을 지닌 지식인이 동학농민군에 참여하게 된 사상적 배경과 일본의 침략에 대한 인식이, '한달문 편지'(한글 편지)에는 열악한 옥중 생활의 고통과 구명의 절박함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국가기록원은 원본을 고해상도로 전자화한 후 편집·보정을 거쳐 원본과 동일한 재질의 한지에 인쇄해 외형을 완벽히 재현했다. 복제본을 전시에 활용함으로써 조명이나 습도로 인한 원본 훼손을 방지하고 보존성을 높였다. 복원과 복제가 완료된 기록물은 고해상도 전자화를 거쳐 국가기록원 누리집(www.archives.go.kr)에서 고품질의 원문을 제공하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누리집(www.1894.or.kr)에서도 곧 확인할 수 있다.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소모사실·사발통문·유광화 편지·한달문 편지가 국가기록원의 복원·복제를 통해 후대에 안전하게 전승될 수 있게 된 점을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번 업무협약은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체계적인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밝혔다. 이용철 국가기록원장은 “132주년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을 맞아 기록물의 복원·복제를 지원한 점을 기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국가적으로 소중한 기록유산들이 안전하게 영구히 보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2008년부터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현재까지 82개 민간·공공기관의 기록물 3,942매를 처리했다. 이번 협력을 통해 동학농민혁명 관련 가치 있는 기록물의 발굴과 보존·활용도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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