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감원, 보험약관 ‘소비자 중심’으로 전면 개편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보험상품 약관과 상품설명서 전면 개편에 나선다. 보험 가입자가 실제 보험금 지급 조건과 지급 제한 조건을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설명체계를 소비자 중심으로 재정비하겠다는 취지다.
보험금 지급 관련 민원이 전체 보험 민원의 57.4%를 차지하는 가운데, 금감원은 과도한 분량과 어려운 전문용어, 중복된 안내체계가 분쟁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개선에 착수했다. 현재 보험약관과 상품설명서는 60쪽을 넘는 경우가 많고 의학·법률 용어 중심으로 구성돼 소비자 이해도가 낮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금감원은 지난달 23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주재로 제2차 금융소비자보호자문위원회를 열고 보험상품 약관·상품설명서 개선 태스크포스(TF)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TF는 소비자·시민단체와 의료·법조·연구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과 보험업계 실무직원으로 구성된 실무반을 통해 오는 7월까지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2017년 상품특성 아이콘 도입, 2020년 시각화된 약관요약서 마련, 약관·상품설명서 이해도 평가 강화 등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보험전문가 중심의 개편으로 인해 어려운 용어의 사용, 과도한 정보의 양 등으로 소비자에 대한 정보전달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보험약관이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라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계약문서라는 점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법적 분쟁에 대비해 세부 내용을 줄이기 어렵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작 핵심 조건을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가 반복돼 온 셈이다.
이번 개편은 상품설명서를 상품·제도 안내로 구분해 보장보다 면책·감액·보상제외 등 지급 제한 조건을 앞단에 배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가 보험료와 보장금액만 보고 상품을 고르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앞으로는 면책기간, 감액기간, 보상 제외 사유, 보험금 지급 제한 조건을 먼저 확인하는 구조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중복된 안내자료도 정리된다. 약관요약서, 상품설명서, 청약서, 계약관리안내장 등에 반복되는 내용을 통합하고 과다한 안내자료를 일원화할 계획이다. 실효성이 낮은 상속인조회, 대리청구제도, 보험가입내역 조회, 중도인출 제도 등은 다른 서류로 옮기는 방안도 검토된다.
시각화와 디지털화도 병행된다. 주요 내용은 그림·아이콘·차트 등 인포그래픽 방식으로 제공하고, 인공지능(AI) 챗봇과 동영상 안내를 보조수단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소비자가 두꺼운 약관 전체를 읽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중요한 보장 제한 조건을 빠르게 찾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용어 순화도 주요 과제다. 면책, 감액, 부담보, 실효, 부활, 기왕증 등 일반 소비자에게 낯선 표현을 쉬운 용어로 바꾸고, 분쟁이 잦은 항목을 중심으로 표준약관을 정비한다.
이번 개편이 곧바로 보험금 지급 기준을 변경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규 계약부터는 가입 단계에서 보장 제한 조건을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어 ‘보장되는 줄 알았다’는 유형의 민원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보험사와 판매채널에는 부담이 불가피하다. 상품설명서 양식 개편, 약관 문구 수정, 전산시스템 반영, 설계사 교육, 판매 스크립트 및 전자청약 화면 개편 등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인보험대리점(GA)과 설계사 조직은 개편된 설명체계에 맞춰 완전판매 확인 절차를 재정비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편은 소비자가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뿐 아니라 ‘언제 받을 수 없는지’를 먼저 보게 만드는 작업”이라며 “판매 현장에는 부담이 생기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보험금 지급 분쟁과 설명의무 관련 민원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