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자산 범죄, ‘금융시장 리스크’로 진화
디지털자산 시장이 커질수록 범죄 리스크도 함께 확대되고 있다. 거래 구조의 특성상 자금 추적과 피해 회복이 쉽지 않은 데다 범죄 수법까지 고도화되면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대응 체계 정비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범죄의 진화와 금융시장 대응 전략을 위한 학술 컨퍼런스’에서 차상진 법률사무소 비컴 대표변호사와 김태일 디지털금융범죄대응연구소 이사장은 디지털자산 범죄가 더 이상 개별 사기나 해킹에 그치지 않고 시장 전반의 구조적 위험으로 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두 사람은 디지털자산 시장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의 속도만큼이나 제도와 집행, 정보공유 체계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개별 피해 넘어 시장 리스크로 전이
먼저 ‘디지털자산 범죄의 진화와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주제로 발표한 차상진 변호사는 디지털자산 범죄의 핵심 특성으로 ▲비가역성 ▲익명성 ▲초국경성을 꼽았다.
자금이 한 번 이동하면 사후 취소나 원상복구가 사실상 어렵고, 다양한 자금을 하나의 풀(Pool)에 섞어 무작위로 분산인출하는 방식으로 인해 거래 인과 관계가 단절되면서 거래 주체 특정과 관할권 판단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선제적인 차단이 아니고서는 실질적 피해 회복이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영장 집행에 수일이 걸리는 사이 자산은 수시간 내 해외로 빠져나가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는 점도 한계로 제시했다.
또한 디지털자산 범죄는 단순한 개별 피해에 머물지 않고 금융시장 전체로 리스크를 전이시킨다는 점도 강조했다. 범죄수익과 일반 자산이 섞이면 일반 이용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 수익 은닉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금융기관은 탈중앙화 구조 탓에 통제 범위가 제한되며, 국가는 자금 유출입 통제와 사법 집행의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차 변호사는 “디지털금융시장의 완성은 ‘기술의 고도화’가 아닌, 시장의 견고한 구조와 시장 주체들의 책임, 사회적 신뢰가 담보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제언했다.
■ 해킹 넘어 사기·세탁까지… 범죄 유형 다변화
김태일 이사장은 ‘디지털자산 범죄 대응 인프라와 정책 과제’라는 주제로, 범죄 유형의 다변화와 공통 인프라 차단 필요성을 집중 조명했다.
그는 “디지털자산 범죄는 거래소 핫월렛(Hot Wallet) 해킹, 스마트컨트랙트 익스플로잇(Smart Contract Exploit), 크로스체인 브릿지 공격(검증자 키 탈취)처럼 자산 자체를 탈취하는 유형을 넘어섰다”며 “이제는 투자사기, 로맨스 스캠, 가짜 투자 플랫폼, 텔레그램 리딩방 사기처럼 피해자를 기만해 송금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인공지능(AI)·딥페이크가 결합되며 사기 수법이 더 정교해지고, 디지털자산이 자금세탁과 불법 환전, 제재 회피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범죄가 기존 제도권 금융망(은행 등)과 별개로 운영하거나, 제도권 금융망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병렬 금융 레일로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개별 범죄를 일일이 뒤쫓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범죄가 공통으로 수렴하는 인프라를 겨냥해야 복수의 범죄 유형을 억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정책 도출을 위해서는 ▲가상자산 긴급 동결 명령 도입 ▲스테이블코인 발행자 의무 법제화 ▲민관 정보 공유 면책 ▲역외 엔티티 제재 권한 ▲한국형 합동 자금세탁방지 태스크포스(JMLIT) 구축 등을 필요 과제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