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보이지 않는 전쟁, ‘경제전쟁의 시대’
미국이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방식은 더 이상 군사력만이 아니라 ‘경제’라는 분석을 담은 신간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원제: Chokepoints)가 출간됐다.
저자 에드워드 피시먼(Edward Fishman)은 미국 국무부, 국방부, 재무부에서 정책 실무자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년간 국제정치의 이면에서 작동해 온 ‘경제전쟁’의 실체를 밀도 있게 풀어낸다. 달러, 금융망, 반도체 기술 등 보이지 않는 권력이 세계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추적하며, 오늘날 국가 간 경쟁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날카롭게 짚는다.
책의 중심에는 ‘초크포인트(Chokepoint·전략적 요충지)’라는 개념이 놓여 있다. 이는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에서 특정 국가가 통제하는 핵심 통로를 의미하며, 이 지점을 장악하면 물리적 충돌 없이도 상대국 경제를 압박할 수 있다. 과거에는 해협과 항구 같은 지리적 요충지가 중요했다면, 오늘날에는 달러 결제 시스템, 국제 금융 네트워크, 첨단 반도체 기술과 같은 비가시적 인프라가 새로운 전략적 거점으로 떠올랐다.
책은 미국이 이러한 초크포인트를 활용해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설계해왔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이란 핵 개발 저지를 위한 금융 제재,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에너지 제재, 중국 기술기업 견제를 위한 반도체 수출 통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행된 원유 가격 상한제까지, 경제가 외교의 보조 수단을 넘어 전면적 압박 수단으로 변모해온 과정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미국 행정부별로 진화해온 경제전쟁의 양상을 비교해 보여주는 점도 흥미롭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제재를 통해 외교적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했다면, 도널드 트럼프는 관세와 수출 통제를 앞세워 경제전쟁의 성격 자체를 바꿔놓았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특히 이러한 수단이 적대국뿐 아니라 동맹국에도 적용되면서, 경제전쟁은 일시적 압박을 넘어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도구로 확장됐다고 진단한다.
저자의 이력은 이 책의 설득력을 한층 높인다. 그는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에서 이란 및 러시아 제재 정책을 직접 설계·운영한 인물로, 100여 명 이상의 핵심 인물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백악관 상황실부터 유럽 외교 무대,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경제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을 촘촘히 복원했다. 정책 결정의 내부를 아는 실무자의 시선이 더해지면서, 독자는 국제정치 뉴스의 이면에서 무엇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다 선명하게 따라갈 수 있다.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는 단순한 국제정치 해설서를 넘어, 세계화 이후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장 질서가 어떻게 국가 권력에 의해 재편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상호의존성이 심화된 세계에서 경제는 더 이상 협력의 언어만이 아니라 충돌의 수단이 됐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쥔 금융과 기술 패권이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은 ‘세계화 이후의 질서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경제안보와 기술패권이 지배하는 시대,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고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재편되는가.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일상이 된 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통찰과 시각을 제공한다.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 에드워드 피시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