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인한 기온 상승과 강수 패턴 변화가 벼 재배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벼 키다리병은 종자를 통해 전염되는 대표적인 병해로, 감염된 종자는 발아 불량, 도복(쓰러짐), 생육 저하, 수량 감소 등 심각한 피해를 초래한다. 최근 고온다습한 기간이 길어지면서 병 발생 양상이 달라지고 원인균 분포도 바뀔 가능성이 커지자, 종자 단계에서 병원균을 조기에 잡아낼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국립종자원(원장 양주필)은 벼 키다리병을 유발하는 주요 곰팡이 4종을 한 번에 검출할 수 있는 '종자 유래 Fusarium 4종 동시다중진단법'을 개발하고 3월 30일 특허를 출원했다고 밝혔다. 출원 번호는 10-2026-0057197이다. 이 기술은 배양 과정 없이 종자나 식물체 추출액을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으로 분석해 병원균을 진단하는 방식으로, PCR은 특정 DNA 구간을 수백만 배로 증폭시켜 미량의 유전자도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이다.
기존에는 병원균을 직접 배양한 뒤 현미경으로 형태를 관찰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이 방법은 병원균 종류를 정확히 구별하기 어렵고 검사자의 숙련도에 크게 의존하며, 배양에만 6일이 걸리는 등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다. 새로 개발된 다중 PCR 기술은 이런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검사 시간을 품종당 6일에서 1일로 83% 단축했고, 정확도는 현미경 검사의 60% 수준에서 99~100%로 40% 향상됐다.
이번 기술의 핵심은 벼 키다리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균 4종(Fusarium fujikuroi, F. proliferatum, F. verticillioides, F. andiyazi)을 동시에 찾아낸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각 균종을 개별적으로 진단해야 했지만, 이제 한 번의 PCR 분석으로 네 가지 균을 모두 확인할 수 있어 업무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 진단 과정은 종자를 마쇄한 후 추출액을 바로 PCR에 사용하면 되며, 별도의 DNA 추출 과정이 필요 없어 더욱 간편하다.
국립종자원 양주필 원장은 "벼 키다리병은 식량안보를 위해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할 종자전염병"이라며 "앞으로도 농업인이 신뢰할 수 있는 종자 관리 기술 혁신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번 기술 개발로 농업인에게 품질이 우수하고 건강한 벼 종자를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