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과 2020년 경주 월성 수습 비편들(돌비석 조각) 원래 하나였다

경주 월성(月城)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발견된 두 조각의 돌비석이 원래 하나의 비석이었음이 고고학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1937년 경주국립박물관이 소장해오던 비편(碑片·비석 조각)과 2020년 경주연구소가 배수로에서 수습한 비편을 비교 분석한 결과, 두 조각의 파손면과 글자 배열이 정확히 맞물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발견은 신라 시대의 금석문(돌에 새긴 글)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1937년에 수습된 비편은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오랫동안 보관해왔다. 2020년 경주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진행하던 중 배수로에서 또 다른 비편을 발견하면서 두 조각이 원래 하나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구진은 두 비편의 형태와 글자 흔적을 정밀 분석했다. 특히 3차원(3D) 스캔을 통해 명암과 손탁본(손으로 비석을 뜨는 전통 방법) 효과를 적용한 결과, 비석의 전체 윤곽과 글자 배열이 드러나 두 조각이 동일한 비석에서 나온 것임이 증명됐다.

비편에는 총 6행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현재 약 11자의 글자가 식별됐다. 판독문에 따르면 첫 번째 줄의 첫 글자는 '跪(꿇을 귀)'로 추정되며, 이는 광개토대왕릉비의 '樂(즐길 락)'자 아랫부분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두 번째 줄에는 '貢(바칠 공)', '白(흰 백)', '稱(일컬을 칭)', '存(있을 존)', '萬(일만 만)' 등의 글자가 확인됐다. 세 번째 줄의 '渡(건널 도)', '不(아니 불)', '天(하늘 천)' 등은 신라 시대 비석에서 흔히 보이는 표현이다. 네 번째 줄 이하의 글자는 일부만 남아 정확한 판독이 어렵지만, '門'을 부수로 하는 글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글자들은 대부분 고대 한국의 왕실 행사나 국가 의례를 기록할 때 사용된 용어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확인된 글자체가 광개토대왕릉비(414년 건립)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광개토대왕릉비는 고구려의 대형 비석으로, 당시의 문자 생활과 정치 질서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경주 월성에서 발견된 비편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신라가 고구려와의 교류 속에서 문자와 비석 세우기 문화를 수용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비석이 월성에서 발견된 점을 고려하면, 신라 왕실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비석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이번 연구는 한국 고대 금석문 연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특히 1937년과 202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발견된 유물이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고고학의 과학적 분석 기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앞으로 더 정밀한 판독과 함께 비석의 전체 내용과 역사적 배경을 밝히는 작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원문보기]

⚖️ 본 콘텐츠는 AI가 재구성한 것으로, 저작권은 원 저작자(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 요청 시 즉시 삭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