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에 재생에너지가 대규모로 연결되면서 발생하는 기술적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전력망 기술기준(그리드코드)을 대폭 고도화하고, 전력망과 시장을 독립적으로 감독할 전문기구 신설에 나선다.\n\n기후에너지환경부는 4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거래소 등 유관기관과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전기화 시대의 전력망 기술기준과 전력감독체계'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목표 달성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0% 확대를 앞두고 전력망 운영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이 집중 논의됐다.\n\n최근 중동전쟁 등으로 에너지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 4월 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주권정부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을 보고하고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조기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산은 전력망 운영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낳고 있다.\n\n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등 출력 조절이 어려운 경직성 전원이 봄철 경부하 시점 전체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5월 62.3%에서 2025년 5월 81.1%로 급상승했다. 같은 기간 연중 최저와 최대 전력수요 간 격차도 48.7GW에서 60.2GW로 크게 벌어졌다.
발전량을 줄이거나 멈추는 출력제어 횟수는 2024년 27회에서 2025년 82회로 3배 증가했고, 제어량은 12.4GWh에서 109.4GWh로 9배나 늘었다.\n\n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기존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발전기와 물리적 특성이 완전히 다르다. 전통적인 동기발전기가 주파수를 형성하고 물리적 관성을 제공하며 무효전력을 공급하는 것과 달리, 인버터에 기반한 태양광·풍력은 주파수를 추종할 뿐 관성이 부족하고 무효전력 공급도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현재의 전력망 운영 체계는 동기발전기의 특성을 기본으로 설계되어 있어 재생에너지 시대에 맞는 혁신이 시급한 상황이다.\n\n전력망 운영의 기술적 기준이 되는 '그리드코드'의 개선도 지체되고 있다. 현재 그리드코드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고시인 '전력계통 신뢰도 및 전기품질 유지기준', 전력거래소가 수립하는 '시장운영규칙', 한국전력이 작성하는 '송변전설비이용규정' 등으로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발전기가 늘어나는 환경에 맞춰 기준을 구체화·정교화하고, 규정에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는 작업은 더딘 실정이다.\n\n전력시장 측면에서도 구조적 문제가 쌓이고 있다. 분산자원 확산과 민간 발전사 증가로 전력시장 참여 주체가 폭발적으로 늘어 전력거래소 회원사 수는 2001년 19개에서 2025년 6월 기준 7,096개로 급증했다.
한국전력공사와의 직접 전력거래(PPA) 계약도 18만 건에 달하며, 직접구매·구역전기사업·통합발전소(VPP) 등 새로운 거래 형태가 등장해 시장 구조가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n\n그러나 현재의 시장감시 체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력시장 운영기관인 한국전력거래소 내 시장감시실은 단 7명 규모의 소조직에 불과하며 운영과 감시 기능이 사실상 일체화되어 있다.
기존 감시 체계는 전력시장 내 거래에만 국한되어 직접전력거래(직접 PPA)나 분산에너지 특구 내 거래 같은 증가하는 장외거래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n\n이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선수와 심판의 분리' 원칙 아래 전력거래소와 한국전력공사 등은 전력망 운영에 집중하고, 이를 독립적으로 감독하는 전문기구로 '전력감독원'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전력감독원은 크게 전력망 감독과 전력시장 감시 두 축으로 운영될 예정이다.\n\n전력망 감독 측면에서는 그리드코드의 고도화 및 이행 관리, 출력제어·비상조치 등 전력망 운영조치의 적절성 평가, 주요 설비 고장 원인의 체계적 조사, 재생에너지 등 분산전원 통합관제 체계 마련을 위한 기관 간 협조체계 구축이 주요 역할이다.
전력시장 감시 측면에서는 시장 내외의 부당거래 감시, 시장 가격·집중도·지배력 분석, 신규·소규모 사업자의 시장 진입 장벽 점검, 전력시장과 장외거래 간 연계 적정성 평가, 전기사업자와 소비자 간 분쟁 조정 지원 등이 포함된다.\n\n주요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전력 규제·감독 체계는 규모와 전문성 면에서 취약하다는 평가다. 미국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약 1,500명)가 전력을 규제·감독하고, 북미전력계통신뢰도공사(NERC, 약 250명)가 전력망 안정성을, 전력망 운영자별 시장감시기구(MMU, 각 20~50명)가 시장을 감시한다.
영국은 가스·전력시장청(Ofgem, 약 1,900명)이, 독일은 연방네트워크청(BNetzA, 약 3,000명)이, 일본은 전력·가스시장감시위원회(EGC, 약 140명)가 각각 독립적인 감독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전기위원회(위원 9명·사무국 9명)와 한국전력거래소 시장감시실(7명)이 업무를 나누고 있지만, 독립성과 전문성 모두 한계가 뚜렷하다.\n\n전력감독체계 개선의 시급성은 해외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4월 28일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이 동시에 정전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복구에 각각 16시간과 12시간이 걸리며 지난 20년간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사고로 기록됐다. 유럽전력망운영자연합(ENTSO-E)이 올해 3월 발표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사고의 핵심 원인은 전력망 전압의 급격한 상승과 제어 기능 상실이었다.
당시 태양광·풍력 발전기들은 전압 변화에 반응하지 않고 운전됐고, 전압 조절 장치는 수동으로 조작되다 급변동에 대응하지 못했다. 국지적 전력망 진동과 부족한 안전 마진이 겹쳐 설비가 연쇄적으로 탈락했으며, 주파수 유지를 위한 비상조치가 오히려 전압 상승을 부채질하는 역효과를 냈다.\n\n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위험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재 전력감독체계는 변화하는 전력망 환경에 맞춰 그리드코드를 고도화하거나 준수 여부를 상시 점검하고 위반을 제재할 능력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