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에이치디씨(HDC)의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공정위는 에이치디씨가 임대차 계약으로 위장해 자금난에 빠진 계열사 아이파크몰에 장기간 저리 자금을 지원한 사실을 적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171억 3천만 원의 과징금(잠정)을 부과하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에이치디씨의 지원 대상이 된 아이파크몰은 서울 용산구에서 복합쇼핑몰 ‘아이파크몰’을 운영하는 회사다. 2001년 용산 민자역사 개발 사업을 통해 분양을 진행했지만, 2005년 무렵 입점률이 68%에 그치는 등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당시 영업손실 61억 원, 당기순손실 215억 원을 기록했고, 미수금과 미지급 공사대금이 각각 404억 원, 962억 원에 달해 완전자본잠식 상태까지 이르렀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아이파크몰은 기존 임대매장 중심에서 직영 매장 방식의 복합쇼핑몰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약 360억 원의 자금이 필요했지만, 재무 상황이 악화된 회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모회사인 에이치디씨가 개입했다.
2006년 3월, 에이치디씨는 아이파크몰과 쇼핑몰 일부 매장을 임대보증금 360억 원에 빌리는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동시에 해당 매장의 운영과 관리 권한을 다시 아이파크몰에 위임하는 ‘운영관리 위임계약’을 별도로 맺고, 발생하는 사용 수익을 나누기로 했다. 이른바 '일괄 거래(Package Deal)' 방식으로, 겉으로는 정상적인 임대차 거래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자금 대여에 가까웠다.
실제로 아이파크몰이 2006년부터 2020년 6월까지 에이치디씨에 지급한 사용수익을 연평균 이자율로 환산하면 약 0.3%에 불과했다. 이는 에이치디씨가 사실상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준 셈이다. 특히 국세청이 2018년 이 거래를 우회적 자금 대여로 보고 과세 처분하자, 에이치디씨는 2020년 7월 계약을 정식 자금대여 약정으로 전환했지만, 이후에도 시중 금리보다 낮은 조건으로 자금을 유지해줬다.
이 같은 지원 덕분에 아이파크몰은 17년 넘게 333억~360억 원대 자금을 사실상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2011년 처음으로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후 용산점의 경쟁력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2022년에는 고척점을 새로 여는 등 복합쇼핑몰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했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아이파크몰이 경쟁사들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시장에서 활동하면서 공정한 거래 질서를 저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제재는 그룹 내 우량 계열사가 자금난에 빠진 계열사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시장 경쟁을 제한한 사례를 적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오랜 기간 임대차 계약으로 위장된 자금 대여의 실질을 밝혀내 탈법 행위를 차단하고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지원 행위 수단의 형식이나 명칭에 관계없이 부당지원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위반 시 엄중히 제재해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