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년 만에 소비자물가지수의 기준 연도를 2025년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개편에 나선다. 이번 개편은 AI 활용 등 디지털 라이프 확산과 국민 소비 패턴 변화를 반영해 물가지수의 현실 체감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가데이터처는 2026년 7월 7일 "2020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를 2025년 기준으로 개편해 오는 12월 18일 공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경제·사회 구조와 가계 소비 패턴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5년마다 대표품목과 가중치를 전면 개편한다.
이번 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국민의 디지털 생활을 적극 반영한 점이다. 새로 추가된 10개 품목을 보면 공업제품 분야에서 밀키트, 조립식수납가구, 스마트워치가 포함됐고, 전기·가스·수도 분야에서는 전기차충전료가 새로 들어갔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클라우드저장공간이용료, 소프트웨어구독료, 영유아강습료, 마라탕, 샐러드, 온라인쇼핑구독료 등 6개 품목이 추가됐다.
반면 소비지출 비중이 크게 줄거나 무상화가 확대된 품목은 제외됐다. 제외된 13개 품목은 땅콩, 도라지, 고사리, 부탄가스, 싱크대, 습기제거제, 저장장치(기준액 미만), 회화용구, 유치원납입금, 학교보충교육비, 보육시설이용료(무상화 확대), 블랙박스, 도시락(지속적 조사 곤란) 등이다.
이에 따라 2025년 기준 대표품목 수는 455개로, 2020년 기준 458개보다 3개 줄었다. 계속 조사되는 품목은 433개이며, 추가 10개, 제외 13개 외에도 세분화와 통합이 이뤄졌다. 세분화된 품목은 돼지고기(국산/수입), 전기동력차(하이브리드/전기), 공기청정기(공기청정기/습도조절기기), 온라인콘텐츠이용료(온라인게임/스트리밍서비스) 등 4개 품목이 8개로 늘었다. 통합된 품목은 찌개백반(김치찌개+된장찌개), 목욕료(목욕료+찜질방), 기타음료(기능성음료+기타음료), 미용료(이발료+미용료) 등 8개 품목이 4개로 줄었다.
가중치(각 품목의 상대적 중요도)도 크게 바뀐다. 2025년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산정한 결과, 지출목적별로 보면 주택·수도·전기·연료(9.6 증가), 음식·숙박(8.5 증가), 기타 상품·서비스(6.2 증가), 오락·문화(4.6 증가) 등의 가중치가 늘었다. 반면 교통·운송(-6.3 감소), 교육(-6.0 감소), 가정용품·가사서비스(-5.5 감소), 식료품·비주류음료(-4.6 감소) 등은 줄었다.
품목성질별로 보면 상품은 25.8 감소(447.6→421.8)한 반면 서비스는 25.8 증가(552.4→578.2)했다. 상품 중에서는 전기·가스·수도(5.2 증가)를 제외한 공업제품(-26.7 감소)과 농축수산물(-4.3 감소)이 모두 줄었다. 서비스 중에서는 집세(6.1 증가)와 개인서비스(22.0 증가)가 늘었고, 공공서비스(-2.3 감소)는 줄었다.
이번 개편에서는 국제 기준에 맞춘 품목 분류 체계 개편도 함께 이뤄진다. 유엔통계국(UNSD)의 국제 소비지출목적분류(COICOP-2018)와 한국 표준 목적별 개별소비지출분류(COICOP-K 2019) 개정을 반영해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지출목적별 분류 체계를 바꾼다.
주요 변경 사항으로는 중분류 명칭이 '교통'에서 '교통 및 운송'으로, '통신'에서 '정보통신'으로 바뀌었다. 포괄범위도 조정돼 보건 분야에 있던 인삼, 홍삼, 비타민제, 건강기능식품, 유산균 등 5개 품목이 식료품·비주류음료로 이동했다. 통신 분야의 우편서비스는 교통·운송으로, 오락·문화 분야의 영상·음향기기, 컴퓨터, 태블릿PC 등은 정보통신으로 각각 이동했다.
소·세분류 체계도 개편됐다. 예를 들어 식료품·비주류음료 중 비주류음료 분류가 통합됐고, 오락·문화 분야에서는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가 세분화됐다. 교육 분야에서는 유치원 및 초등교육이 제외됐으며, 기타 상품·서비스 분야에서는 보험 및 기타 금융과 기타 서비스가 세분화됐다.
국가데이터처는 이번 대표품목 선정(안)에 대해 7월 7일부터 17일까지 국민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한다. 의견 제출은 소통혁신24(sotong.go.kr), 국민생각함(epeople.go.kr/idea), 국가데이터처 누리집(mods.go.kr) 및 소비자물가지수 누리집(mods.go.kr/cpi)을 통해 가능하다. 접수된 의견은 타당성 검토를 거친 후 국가통계위원회 심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개편 결과는 2026년 12월 18일 발표되며, 12월 31일에는 새로운 2025년 기준의 소비자물가동향(2026년 12월 및 연간)이 공표된다. 이번 개편으로 기존 2020년 기준에서 산출된 2025년 1월부터 2026년 11월까지의 소비자물가지수 및 물가상승률 수치는 2025년 기준으로 변경될 수 있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기준 연도 변경을 넘어 국민의 실제 소비 생활을 더 정확히 반영하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AI와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소프트웨어구독료, 클라우드저장공간이용료, 스마트워치 등이 새로 포함된 점이 눈에 띈다. 반면 전통적인 식재료인 고사리나 도라지가 제외된 것은 소비 패턴의 변화를 보여준다.
가중치 변화에서도 주목할 점은 주거비와 외식비 비중이 증가한 반면 교육비와 교통비 비중은 감소한 것이다. 이는 고물가 속에서도 주거와 식생활 관련 지출이 늘어난 반면, 교육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현실을 반영한다.
국제 분류 체계 개편은 국가 간 물가 비교의 정합성을 높이고, 국내 통계 간 연계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건강기능식품이 보건에서 식료품으로 이동한 것은 소비자들이 건강기능식품을 단순한 의약품이 아닌 식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반영한 것이다.
국가데이터처는 "이번 개편을 통해 물가지수의 현실 체감도를 높이고,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와 통계 수치 간 괴리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민 의견을 적극 수렴해 대표품목 선정의 타당성을 높이고, 국가통계위원회의 엄정한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은 5년 주기로 이뤄지지만, 가중치는 2~3년마다 추가 조정된다. 이번 개편으로 2025년 기준 지수는 2026년 12월부터 본격 활용되며, 이후 2027년 기준 가중치 개편 등 후속 작업도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