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기존 철강 수입 규제 조치를 대체하는 새로운 철강 관리 제도를 도입하면서, 한국은 총 207만 3000톤 규모의 전용 무관세 수출 쿼터를 확보했다.
EU 집행위원회는 6월 30일(현지시간)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 조치를 대체하는 신철강 조치의 운영 계획과 함께 국가별 철강 쿼터 물량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신조치는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EU가 새롭게 도입한 수입 관리 제도다.
EU는 7월 1일부터 철강 30개 품목에 대해 쿼터를 초과하는 물량에 적용되는 관세를 50%로 인상하는 대신, 연간 총 1835만 톤에 대해서는 무관세로 수입을 허용하는 관세할당제(TRQ)를 시행한다.
EU는 2018년부터 철강 30개 품목을 대상으로 글로벌 세이프가드 조치를 운영해 왔다. 기존 제도 아래에서는 총 3382만 톤 한도 내에서 무관세 수입이 가능했고, 쿼터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25%의 관세가 부과됐다. 그러나 이 조치가 6월 30일자로 종료됨에 따라 EU는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무관세로 수입할 수 있는 물량이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EU 전체 무관세 물량은 기존 3382만 톤에서 1835만 톤으로 약 46% 감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주요 철강 수출국들은 제한된 물량을 두고 치열한 협상을 벌여야 했다.
EU는 지난 4월부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른 관세 양허 수정 절차에 따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일본, 영국, 튀르키예(터키), 중국, 대만 등 20여 개 주요 철강 수출국과 철강 관세 인상 및 무관세 쿼터 배분 문제를 협의해 왔다.
EU의 새로운 쿼터 배분 구조는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간에 실제 활용 가능한 무관세 물량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EU는 품목별로 WTO 국가쿼터뿐 아니라 FTA 국가쿼터와 FTA 공용 쿼터를 별도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EU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는 FTA 기반 쿼터를 활용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됐다.
한국은 한-EU FTA 체결국이자 전략적 파트너라는 지위를 바탕으로, 한국산 철강에 대해 FTA 파트너로서의 정당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협상 전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제네바에서의 실무 협상은 물론,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의 고위급 협상 채널을 함께 가동하며 한국산 철강에 대한 우호적인 대우를 요청했다.
특히 한국산 철강이 단순한 수입품이 아니라 EU의 자동차·가전 등 제조업의 안정적 공급망과 한국 기업의 현지 투자·고용을 뒷받침하는 핵심 소재라는 점을 EU 측에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6월에 열린 한-EU 정상회담은 협상 막바지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EU의 신철강 조치 시행을 불과 몇 주 앞두고 협상이 집중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철강 문제는 양측 최고위급이 직접 인식하고 관리하는 핵심 경제통상 현안으로 부상했다. 실제 정상회담에서도 철강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됐고, 이를 계기로 한국산 철강의 EU 산업 공급망 기여와 FTA 파트너로서의 정당한 대우 필요성에 대한 EU 측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협상에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졌다.
정부가 정상급·고위급·실무급 채널을 총동원해 EU 측과 협의를 이어간 결과,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와 경쟁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한국 전용 쿼터로 총 207만 3000톤을 확보했다. 이는 기존 글로벌 세이프가드 8차년도(2025년 7월~2026년 6월)의 한국 국가쿼터 258만 1000톤 대비 약 19.7% 감소한 수준이지만, EU 전체 무관세 물량이 약 46%나 축소되는 상황에서 한국산 철강의 EU 시장 접근 기반을 최대한 방어한 결과로 평가된다.
EU의 신철강 조치상 쿼터 배분 구조를 살펴보면, 품목별 EU 시장점유율과 FTA 체결 여부 등을 고려해 국가별 전용쿼터와 공용쿼터로 구분된다. 최근 3년(2022~2024년) 평균 수입물량 기준 EU 시장점유율이 5% 이상인 품목의 경우 쿼터는 ▲WTO 국가쿼터 ▲FTA 국가쿼터 ▲FTA 공용 쿼터로 나뉜다. 이 중 WTO 국가쿼터와 FTA 국가쿼터는 특정 국가에 배정되는 전용 쿼터이며, FTA 공용쿼터는 해당 품목에 대한 EU 시장점유율이 5% 이상인 국가 중 EU와 FTA를 체결한 국가들이 경쟁을 통해 사용하는 물량이다.
EU 시장점유율이 5% 미만인 품목의 경우 쿼터는 ▲FTA 국가쿼터 ▲WTO 공용쿼터 ▲FTA 공용쿼터로 나뉜다. 이 중 FTA 국가쿼터는 국가 전용 쿼터이고, WTO 공용쿼터는 WTO 회원국 간, FTA 공용쿼터는 EU와 FTA를 체결한 국가 간 경쟁을 통해 사용하는 구조다.
이처럼 EU의 새로운 쿼터 체계에서는 FTA 체결국에 별도로 배정되거나 FTA 체결국 간에만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EU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는 일부 쿼터 활용에서 구조적 제약을 받게 되는 반면, 한국은 한-EU FTA 체결국 지위를 바탕으로 한국 전용 국가쿼터와 FTA 공용쿼터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번 EU 철강 쿼터가 적용되는 총 30개 품목 중 최근 3년(2022~2024년) 평균 EU 시장점유율이 5% 이상인 품목은 총 14개다. 이들 14개 품목에 대해서는 한국 전용 국가쿼터(WTO 국가쿼터 및 FTA 국가쿼터) 205만 7000톤과 FTA 공용쿼터 90만 8000톤이 배정됐다. EU 시장점유율이 5% 미만인 나머지 16개 품목에 대해서는 한국 전용 국가쿼터(FTA 국가쿼터) 1만 6000톤과 공용쿼터(WTO 공용쿼터 및 FTA 공용쿼터) 56만 7000톤이 배정됐다.
이에 따라 한국이 다른 국가와 경쟁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전용 국가쿼터는 총 207만 3000톤이며, 국가 간 경쟁을 통해 추가로 활용 가능한 공용쿼터는 총 147만 5000톤이다. 공용쿼터 147만 5000톤은 국가들 간 선착순으로 활용 가능한 것이므로, 우리 기업들이 일정 쿼터를 확보한다고 볼 때 이를 모두 합산할 경우 우리 철강업계가 무관세로 활용할 수 있는 총 가용 쿼터는 207만 3000~354만 8000톤 규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향후 한국 전용 국가쿼터의 안정적 활용은 물론, 공용쿼터에 대해서도 우리 업계가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업계와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EU 시장 내 한국산 철강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신철강 조치로 인한 수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이번 협상은 단순히 쿼터 숫자를 조정하는 기술 협상이 아니라, EU 전체 무관세 물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20여 개 주요 철강 수출국이 제한된 물량을 놓고 경쟁한 치열한 협상이었다는 평가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EU 정상회담이 협상 막바지 결정적 국면에 개최되면서, 한국산 철강이 EU 산업 공급망과 현지 투자·고용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이 EU의 FTA 파트너이자 전략적 협력국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정상급 차원에서 강력히 제기할 수 있었다”며 “이러한 정상외교의 모멘텀이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고 밝혔다.
또한 여 본부장은 “통상협상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투자, 고용, 산업경쟁력, 전략적 신뢰를 종합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라며 “정부는 한국이 한-EU FTA 체결국으로서 갖는 위상과 한국산 철강이 EU 산업에 기여하는 실질적 가치를 끝까지 설명했고, 우리 기업이 EU 시장에서 한 톤이라도 더 안정적으로 수출할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가용한 모든 채널을 활용해 총력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과 주요국의 수입 규제 강화 흐름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안정적인 해외시장 접근과 경쟁력 유지를 위해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필요한 통상 대응을 선제적으로 지속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