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76주년인 25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故 김선일 소령을 추모하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1951년 1월 1일 경기도 양주지구 전투에서 29세의 나이로 전사한 그는 두 개의 무공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었지만, 직계 유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75년 동안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했다.
1921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故 김선일 소령은 임신한 아내를 고향에 남겨둔 채 1947년 단신으로 남하해 육군사관학교(제8기)에 입학했다. 1949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그는 개성·문산·봉일천 방어작전,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 전투, 평양 탈환 작전 등 최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정부는 그의 공헌을 인정해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으며, 2021년 12월에는 대위에서 소령으로 추서했다.
그러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향에 남겨진 아내와 생이별하면서 직계 유가족이 없어 국가유공자 신청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지만, 등록을 신청할 유가족이 없어 법적 예우를 받지 못한 채 잊혀진 존재가 됐다.
지난해 8월, 故 김선일 소령의 외조카가 국민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국민권익위는 관계기관 자료 조회와 의견 수렴을 거쳐 지난해 11월 그가 국가유공자로 미등록 상태임을 공식 확인했다. 이 사례가 단순한 개인 민원을 넘어 광범위한 제도적 사각지대의 단면임을 인식한 국민권익위는 올해 1월, 6·25 무연고 전몰군경의 국가유공자 직권등록을 위한 기획조사에 착수했다.
국가보훈부는 관계 법령에 따라 직계 유가족이 없는 경우 정부 직권으로 국가유공자 등록이 가능하다는 검토 결과를 회신했고, 이에 따라 올해 6월 故 김선일 소령의 국가유공자 직권등록이 확정됐다. 오늘 추모식에서는 국가보훈부가 故 김선일 소령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헌정하며 75년 만에 마땅한 예우를 완성했다.
국민권익위와 국가보훈부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국립묘지 등에 안장된 6·25 무연고 전몰군경의 국가유공자 직권등록을 위한 범정부추진단 구성·출범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공백을 구조적으로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권익위 정일연 위원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잊힌 분들이 아직 많다\"며 \"국가는 그분들을 끝까지 찾아 합당한 예우를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 전수조사와 범정부추진단을 통해 단 한 분의 전쟁영웅도 빠짐없이 국가유공자에 등록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