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재무 위기 상황에서 보험금 수령의 절차적 장벽이 재조명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공개한 민원 사례에 따르면, 뇌졸중으로 인해 의식을 잃은 피보험자의 자녀가 진단보험금을 대신 청구했으나 거절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보험사는 법적 청구권자가 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했고, 분쟁조정에서도 동일한 판단이 유지됐다. 이 사례는 가족 간의 신뢰 관계만으로는 보험금 청구라는 법적 행위를 수행할 수 없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번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피보험자의 의사결정 능력 상실 상황에 대비한 사전 제도적 준비의 필요성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를 위해 ‘지정대리청구인’ 제도를 운영 중이며, 별도의 보험료 없이 콜센터나 모바일 앱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피보험자가 사전에 배우자나 3촌 이내 친족을 대리청구인으로 등록하면, 급성 질환 또는 치매 등으로 인해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보험금을 신속하게 수령할 수 있다.
성년후견인 제도를 활용하는 경우, 의학적 평가와 법원 심사를 거쳐야 하며 수개월의 시간과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반면 지정대리청구인은 절차적 신속성과 접근성에서 우위를 보인다. 일부 보험사는 이 제도의 효용성 강화를 위해 대리청구인을 2명까지 지정할 수 있도록 개선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청구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고령 인구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함에 따라 치매 및 중증 뇌혈관 질환 발생률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보험계약 내 지정대리청구인의 등록 여부는 단순한 계약 사항을 넘어 가계 금융 리스크 관리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가입자 보호 측면에서 해당 제도에 대한 안내 강화와 인지도 제고를 위한 정기적 캠페인 확대를 검토 중이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건강 위기에 대비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보험은 단기적 보상 체계를 넘어 삶의 리스크를 사전에 분산하는 장기적 금융 설계 도구로서의 기능이 강조되고 있으며, 지정대리청구인 제도는 그 틀 안에서 실질적 보호망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