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인 디폴트옵션이 본래 목적이었던 자산배분 투자 활성화보다는 안정형 상품 중심의 운용 패턴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제도 도입 이후 가입자의 투자 성향 변화를 유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제 자금 분포는 여전히 위험 회피 성향에 머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제도 설계상의 변화와 실제 소비자 행동 사이에 격차가 존재함을 방증한다.

2025년 4분기 기준 디폴트옵션 적립금 중 은행권은 전체의 84.7%인 약 45조2000억원을, 보험권은 4.9%에 해당하는 2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은행권 적립금의 87.2%, 보험권의 84.0%가 안정형 상품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 라인업은 안정형 외에 중립투자형과 적극투자형 등이 고른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선택은 여전히 원리금 보장에 가까운 구조에 치우쳐 있다.
상품명의 위험등급 또한 ‘초저위험’에서 ‘안정형’으로, ‘고위험’에서 ‘적극투자형’으로 변경되며 투자 친화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개편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변화가 투자자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퇴직연금이 노후 생계자금이라는 인식이 강해 손실 회피 심리가 지배적이며, 이로 인해 자산배분의 효과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수익률 면에서는 보험사가 다소 앞선다. 2025년 기준 상품별 1년 수익률(단순평균)은 보험권이 8.98%, 은행권이 8.80%를 기록했다. 이는 보험사가 타깃데이트펀드(TDF) 기반의 장기 분산 투자 구조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반면, 은행은 상장지수펀드(ETF) 중심으로 단기 변동성에 영향을 더 받는 포트폴리오를 꾸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제도의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상품 개선을 넘어 가입자의 투자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금융회사의 판매 관행이 여전히 안정형 상품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 이에 대한 구조적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으로 디폴트옵션이 국민 노후 자산 형성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제도의 취지가 현실에서 반영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